[아침을 여는 詩] 웃음끼리 / 박명숙

2024년 09월 08일(일) 19:19

헛웃음과 쓴웃음 너머
옷들이 걸려 있네

옷 안에는 몸이 없네
빈 몸으로 펄럭이네

옷들을 우러르면서
웃음들이 뒤엉키네
(단시조집 ‘어긋나기’, 목언예원, 2024)

[시의 눈]

오디오에 뮤직 큐를 넣습니다. 고전적 낭만풍을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의 집을 짓고 그 안의 침묵과 젖은 그림자를 쫓아내며 차오르는 그 생상스 교향곡을 듣습니다. 내 오랜 습관이지요. 난 둘째가 쓰다 간 빈방에 듭니다. 눅눅한 공간을 달래듯 발자국은 리듬에 이끌리는군요. 카미유 생상스는 시인의 말처럼 빈 몸의 옷들을 일별하게도 합니다. 카페에 수다 떨 옷들의 웃음을 난 음악으로 치환해 봅니다. 농문을 열자 도열한 빈옷들이 춤을 춥니다. 거기 숨은 웃음들이 이때다 뒤엉켜 달려드는군요 무미건조한 내게 이옷저옷 보이며 빙긋 웃게도 만듭니다. 오늘은 한 옷을 입으려 합니다. 이 허물의 옷 중 내게 눈짓을 계속 퍼붓는 한 소매자락이 있습니다. 옷집게로 장롱의 맨 윗칸을 훑어가며 낚시하듯 빼오지요. 아, 가을 억새처럼도 보이는군요. 오늘 강의 때는 이 엷은 하늘색 셔츠를 입을까 합니다. 헛웃음, 쓴웃음은 옷장에 두고 문을 닫습니다. 이빨 희게 내미는 가을 신상품과 같은 이 고급 감각으로 수강자들의 ‘옷’을 ‘웃음’으로 홀려야 하지 않겠어요? 시건방진 웃음이 입술을 타고 옵니다. 박명숙 시인은 경기 고양에서 출생,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해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시집 ‘어머니와 어머니가’(2013), ‘은빛 소나기’(2011) 등이 있습니다. 그는 말을 살리기 위해 말의 집을 여러 채 짓고 그게 마을을 이루게 하는, 아니 그 마을을 지배하는 성주(城主)와도 같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