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리뷰]마당에 모인 모든 존재들이 펼쳐낸 다채로운 ‘울림’의 향연 ‘판소리, 모두의 울림’ 뒤엉킨 도시로부터 태초의 소리로…비인간 주체 목소리 주목 ‘소리 숲’ 주제로 한 양림동 외부전시장, 골목 곳곳이 예술의 장 최명진 기자

2024년 09월 08일(일) 19:47

맥스 후퍼 슈나이더作 ‘용해의 들판’

마르게리트 위모作 ‘*휘젓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통로를 걷다 보면 도시의 요란한 소음이 느껴진다. 지구의 불협화음,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를 다룬 섹션답게 1전시실의 첫인상은 빽빽하고 복잡했다. 벽면에는 각종 폐기물이 꼴라주된 회화가, 한쪽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선 거대한 철물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미로처럼 촘촘히 들어찬 전시장 가벽 역시 밀도 높은 지구 생태계를 표현하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게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의 이야기다.

지난 6일 찾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는 마치 다양한 종들이 총집합한 우주 세계 같았다. 30개국 72명 예술가의 작품은 제각기 다른 형태와 특징을 갖췄지만 결국 이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

‘판소리’를 하나의 은유이자 전시 방법론으로 삼은 만큼 곳곳에선 사운드와 공간을 이어낸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노엘 W. 앤더슨은 세 점의 벽면 태피스트리 작품과 함께 사운드 설치를 선보인다. 여기에선 판소리를 기반으로 흑인가수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를 입힌 노래가 흘러나온다.

해리슨 피어스作 ‘원자가’

판소리 리듬에 맞춰 10여개의 풍선형 실리콘 조형물이 일제히 통통 튀어 오르는 모습을 연출한 해리슨 피어스의 키네틱 조각 사운드 설치 작품 ‘원자가’도 인상 깊다.

역동적이면서도 압도적인 규모가 돋보이는 작품은 제3전시실의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용해의 들판’이다. 화려한 정원을 표방하고 있지만 분수대에서는 검정에 가까운 진녹색 물이 뿜어져 나오고 타이어와 호스, 버려진 장화 등 폐기물이 자연 생태계와 어우러져 있어 다소 기묘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식물과 동물, 비인간이 번성하는 이러한 새로운 생태계 모습을 통해 언젠가 ‘용해’돼 생태적 가치를 다시금 찾게 될 미래를 기대한다.

모든 존재와의 소통에 주목하는 3전시실 ‘겹침소리’에 이어 4, 5전시실은 ‘처음소리’를 바탕으로 꾸려졌다. 가장 태초의 소리, 아주 작은 존재에 주목하는 이번 섹션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미시적인 것을 포착해낸다.

소금 사막으로 이뤄진 비앙카 봉디作 길고 어두운 헤엄’

전시장 한가운데를 소금 사막으로 메운 비앙카 봉디의 설치 작품 ‘길고 어두운 헤엄’을 거니는 일은 오묘한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 사다리, 목걸이 장식 등 곳곳의 일상적 사물은 몽환적 배경과 어우러지며 초감각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벽면과 바닥을 따라 길을 낸 핑크빛 반짝이는 미미박의 설치작품 ‘발광하는 우리’는 무수한 잠재력을 품은 별자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를 만드는 과정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본전시 외부전시장으로 활용되는 양림동에서는 ‘소리 숲’을 주제로 한 12명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빈집이나 옛 경찰서 등을 전시장 삼아 양림동 골목 곳곳이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됐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글라스폴리곤에 설치된 전형산 작가 작품.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선 키네틱과 소리적 요소가 합쳐진 줄리앙 아브라함 ‘또가’의 비디오 설치 작업을, 한부철갤러리와 한희원 미술관에선 안젤라 블록의 드로잉머신 작업과 김영은의 비디오 작업 ‘오선보 이야기’를 각각 만나볼 수 있다.

양림문화샘터에선 지역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김형숙 작가는 고향인 나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도시화의 결과와 이로 인한 갈등을 보여주며, 김자이 작가는 지역 주민들과 협력해 일궈낸 예술 프로젝트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Re-member)’로 탄소 배출과 환경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

얽히고설킨 동시대 지구 생태계를 살펴보는 데서부터 시작해 조화를 이루며 중첩된 소리를 찾는 일, 분자 단위의 매우 세밀한 종들의 이야기까지. 모든 존재의 ‘소리’를 향유하는 이번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 개체의 공존을 다루며 인류세 위기에 부닥친 지구 공간의 조직과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에 커다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