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AI 산업을 이끌 선도기업이 있어야 / 이정록 |
| 2024년 09월 10일(화)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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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전자신문이 AI 관련 전문가들에게 서면조사를 했다. AI 산업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육성해야 할 분야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인재와 생태계를 꼽았다. 유능한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생태계가 이뤄지도록 지원할 때 AI 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시애틀은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IT 관련 종사자가 약 29만 명으로 샌프란시스코의 35만 명에 이어 미국 2위다. 아마존을 필두로 인포시스, 티모바일, 코스트코, 노드스트롬, 익스피디아 등의 본사가 시애틀이다. 시애틀 인근 레드먼드에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가 있다. 시애틀 교외 남쪽 켄트에는 아마존 창업자가 만든 민간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이 있고, 스페이스X의 지사도 있다. 시애틀이 ‘세계 클라우드의 수도’를 넘어 우주산업의 스타트업으로 부상 중이다. 관련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IT 산업과 거리가 먼 도시였다. 초기에는 농업과 수산업 도시였고, 산림 벌목으로 제재소가 많이 생기면서 목재 생산지로 알려졌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군수공장도 들어섰다. 1916년 보잉사가 설립되면서 시애틀은 항공산업 도시가 됐다. 당시 항공기 몸체는 전나무로 만들었는데 시애틀에 질 좋은 나무가 많았다. 시애틀의 지리가 만든 결과다.
시애틀이 IT 도시로 변신한 결정적 계기는 MS와 아마존이 제공했다. MS는 1975년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설립됐다. 종업원은 3명이었다. 유일한 납품처였던 컴퓨터 생산업체 MITS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3년 뒤 매출은 100만 달러로, 종업원은 13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회사를 자신들의 고향 시애틀로 옮긴다. 앨버커키를 떠나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전을 감행했다. 1979년 1월이었다.
15년 후인 1994년 아마존이 시애틀에서 창업됐다.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고향인 뉴멕시코 앨버커키가 아닌 시애틀을 택했다. 시애틀에 첨단산업 생태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MS가 이전한 후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프로그래머들이 몰려들었다. 스타트업도 생겼다. 이들에게 자본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도 등장했다. 신산업 생태계는 아마존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됐다. MS와 아마존이란 쌍두마차는 시애틀을 ‘제2의 실리콘밸리’로 변신시켰다.
생태계는 여러 구성요소의 합작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 대학과 연구소,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상업화 가능한 제품으로 탄생되고, 특정 도시에 하나의 산업군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 환경을 만드는데 핵심 요체는 단연코 선도기업의 존재다. 시애틀에 MS라는 자석이 없었다면 아마존은 다른 곳에서 창업했을 것이고, 오늘날의 시애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산업 생태계는 여러 곳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태계 구성요소 간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곳에 국지적으로 형성된다. 경로의존성이 만든 지역적 집중화 현상 때문이다. 이 과정에 선도기업의 존재는 필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휴렛팩커드, 우리나라 여수 석유화학단지에서 GS칼텍스, 구미 전자산업 집적지에서 삼성과 LG, 현재 뜨고 있는 성남시 분당과 판교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그 역할을 했다.
광주가 2020년부터 추진하는 AI 산업단지도 마찬가지다. 단지가 경쟁력을 가진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발전하려면 관련된 인프라는 물론이고 기업과 인재와 기술이 상호 결합돼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수십 개의 작은 스타트업 만으로 생태계를 꾸려 갈 수 없다. 생태계 구축과정에 선도기업 존재는 필수다. 향후 우리나라 AI 산업을 이끌 삼성전자, SK텔레콤, 네이버, 카카오, KT 등이 광주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광주에서 AI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주축은 기업이다. 물론 정부와 광주시가 법적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국비를 쏟으면 생태계 조성에 힘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언급한 내용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능사가 아니다. 관 주도적 생태계 구축작업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애틀을 만든 MS나 아마존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태계 구축과정의 필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