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진실로 친선을 원한다면 과거부터 사과하라 / 오주섭

2024년 09월 26일(목) 19:28

오주섭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친일 청산 못한 결과,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임명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집단, 국가가 반성하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데 그들을 감싼다면, 심지어 추종을 한다면 이것을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 35년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결과 광복 7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은 친일, 일본 앞잡이, 밀정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반대하며 건립한 독립기념관장에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뉴라이트 출신을 임명한 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친일매국노들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가 참혹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 출발점, 일본의 진정한 사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3년 10월3일 기고문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이 진실로 양국의 우호 친선을 원할 경우 먼저 자기가 우리 민족에게 범한 그 포학무도(暴虐無道)한 과거를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억지로라도 이를 일본에 요구함은 결코 우리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만이 과거의 숙원(宿怨)을 청산하는 길이며, 따라서 우호와 친선의 양국 관계를 이루는데 절대 불가결의 출발점을 이루기 때문인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일본은 먼저 자기 과오를 우리 앞에 청산하는 성의를 가져야 한다. 일본이 이와 같은 성의를 표할진대 우리도 구태여 지난날의 감정만을 고집할 협량(狹量)의 민족은 아닌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65년 6월, 박정희 정권이 한 일 수교를 하기 오래전부터 한·일 관계 개선의 첫 번째 조건으로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오를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복 이후 특히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그들이 저지른 포학무도한 과거를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 학살 등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반성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나치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으로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부흥은 한국전쟁 특수 덕

김 전 대통령은 또 기고문에서 일본이 패망한 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민족 원한의 6.25 동란이 일본을 위하여는 천래(天來)의 행운이 되었으니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일본은 한국전쟁 중 소위 특수 벼락 경기의 덕택으로 패전이 누구의 일이었더냐?할 정도로 살찌고 기름졌으며, 또 상상도 못할 정도의 관대한 구화조약(�N和條約,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일컬은 듯함)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와 민간인으로 이루어진 수입 일방(一方)의 무역액도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는 것은 일본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 곤룡(袞龍)의 소맷자락에 숨어서 거만한 무역 태도와 무책임한 조악품(粗惡品)을 수출하는가 하면, 한국 경제는 일본이 아니면 존립할 수 없는 것 같이 방언(放言)하여 왔으며, 심지어는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선박을 유독 우리나라에만 이를 거부하는 해괴한 행동을 취하여 왔던 것이다. 일본이 진실로 현명하다면 차제에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노력하는 동시에 한국 부흥에 성의와 관심을 경주하여 이웃 나라의 재건에 진심으로 협조하는 태도로 임함으로써 이와 같은 문제는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 앞세워 친선만 강조, 극히 위험한 견해

김 전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한일 양국 간의 관계 개선에만 몰두해 양국 친선만을 강조한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일언(一言)코자 함은, 한국의 일부 인사 중에는 현 정세 하 한 일 관계 개선이 요청되는 면에만 관심한 나머지 덮어놓고 양국 친선만을 운위(云謂)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극히 위험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남에게 교만을 부릴 하등의 필요도 심사(心思)도 없으나 한편 남으로부터 받아야 할 당연한 예절을 포기함으로써 민족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한·일간의 금후(今後) 천년 국교의 기본적 출발점이 됨에서랴.”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뉴라이트 등 역사를 왜곡하려는 자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궤변(詭辯)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려 들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음에도 사과하지 않는데 이를 두둔하거나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