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문학 백일장]종합대상 / 장소영 최명진 기자

2024년 10월 07일(월) 19:38

<두 음절에 담다>

어느날 불쑥 전화를 겁니다. 상대방의

“왜?”

물음에

“그냥…”

이라고 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원인은 있지만 그 원인이 아주 불분명할 때 쓰는 말이며 즉흥적이기까지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허물없고 가식없는 따스한 정이 담뿍 담긴 이 말. 목적이 없으면서도 목적이 살아 있는 “그냥”. 보고 싶은 마음도 그리워한다는 마음도 다 가지고 있는 말, 평범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그냥”이라는 말….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여유를 우리는 잊고 사는 듯합니다.

“그냥”은 살아가면서 원인과 결과를 따지거나 목적과 가치를 구별하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식에게 맹목적 사랑을 무한히 베푸는 부모의 사랑, 친구와의 조건 없는 우정, 타인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 나라를 위한 충정 등 주위를 조금만 돌아봐도 “그냥”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현재도 진행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제학술대회 포럼에 참가했을 때입니다. 이런 저런 발제와 토론이 끝나고 폐막식을 선언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회장이 아쉬움을 표현하며 “그냥”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부족함과 모자람까지도 다 수용하고 있는 이 말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깊은 울림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먹먹하게 치고 올라오는 그 뜨거운 무언가를 서로 공유하고 있음을 공기로 느꼈습니다.

이렇듯 “그냥”이란 단어가 가슴 먹먹한 진동으로 다가오고 ‘어떠한 작용을 가하지 않거나 상태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론 야릇하게도 가끔은 본래의 뜻을 벗어나 ‘아무 이유 없이, 생각 없이’로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거지요. 더 나아가 이상하고 숨긴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민주항쟁의 시기를 거쳐야 했던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경제개발은 성공적으로 이루었지만 긴 독재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대통령 뒤에서 신군사정권이 장악을 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최루가스와 연막탄, 구호, 감시 속에서 김지하의 금서를 읽고, 토론하며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는 데 조금이나 힘을 보태기 위해 목청을 높였답니다.

부모님과 교수님들께서는 자식과 제자가 행여 다칠까 봐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우리를 말렸습니다. 매일, 하루 종일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전경들이 있어 교문을 들어서는 것조차 힘겨웠는데 어느 날 무심코 마주친 눈길에 놀라 서로 허둥대던 때가 있었지요. 엊그제까지 함께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쳤던 동아리 후배가 전경 무리 속에 앉아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 현실 앞에 울컥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냥 끌려 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그냥 우리를 쳐다보아야 했던 그 마음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시절 캠퍼스와 시위 현장을 종횡무진하던 스무 살의 이야기는 까무러치는 웃음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활짝 꽃 피우지 못 했지만 그 기억의 향기는 지금도 여전히 주위에 남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곤 한답니다.

어찌하다 보니 5·18 항쟁이 일어난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80년 당시 타 지역에 살고, 타 지역 대학을 다녀 제대로 아는 바 없던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입니다. 타향이기에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을 늘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투박한 말투가 설고 사투리가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들썩이는 삶이다 보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역사회 문제는 눈과 귀를 닫아 알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헌데, 예상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느릿이 물이 차오르듯 이 땅에 대한 애정도 스믈스믈 생기더군요. 이렇게 마음을 풀어 헤치면 훨훨 담이 헐릴 것을 왜 그리 꼿꼿하게 굴었을까요. 고정된 생각으로 지나친 것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특히나 ‘그냥’이라 뭉뚱거려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5·18 사태 앞에서 물밀듯 밀려오는 부끄럼이 컸습니다.

5·18을 일으켰던 이들이 세상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주범은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이 두 다리 뻗고 잘 먹고 잘 살다 무사히 생을 마쳤지요. 그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왜곡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 항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진실은 묻히고 시민 스스로 지켜야 했던 아우성은 폭도라는 명칭으로 박제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정의를 모르는 철면피가 아닌 이상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역사를 되새겨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온정의 훈풍이 불던 신록의 계절 오월 어느 날이었지요. 때 잊은 거센 삭풍이 피어난 꽃들을 뚝뚝 떨어지게 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갖은 악행과 고난을 겪으며 거리에서 밀실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러져간 많은 이웃들의 죽음과 참상을 차마 함부로 올릴 수 없어 입을 다물어 버린 사람들을 봅니다.

겪어본 자만이 아는 실상을 어찌 전달하며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설령 듣는다 한들 얼마만큼 통감하며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상처를 다시 파헤치는 아픔인 게지요. 어떤 분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사람이 “그냥~ 정말 밉습디다.” 말씀하시더군요. 이 말에는 선혈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아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 했습니다.

알지만 모르쇠로 책임 소재도 이유도 밝히지 않아 피해자만 있을 뿐인 요상한 역사가 “그냥” 흐르고 있는 이 땅입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단순하게 “그냥”이라며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양 진실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기억만 속절없이 세월을 거스릅니다.

어떤 형태로든 본질을 규명하고 파악하길 꺼립니다. 답답함만 허공을 떠돌고 있습니다. 짓눌린 아픔의 땅에 눌러 살지만 이 사람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한두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절묘한 두 음절 “그냥”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이 “그냥”이 너털웃음 같은 헐렁함과 가벼움만을 표현하는 말이 될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종합대상 수상자 장소영 씨 “상처 받는 이들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의 메시지 됐으면”

“제 글이 다른 사람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다듬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광주인이 아닌 외부 시선으로 바라본 광주를 담아내고자 했어요. 상처받은 분들이나 뒤안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한 스푼의 소스가 되면 좋겠어요.”

광주매일신문이 주최한 제11회 무등산 문학 백일장에서 종합대상을 수상한 장소영(63) 씨는 “부족한 글임에도 낙점해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예상치 못한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1994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광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해 10회 대회 때 출품작 ‘하늘 물고기’로 일반부 산문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이듬해인 올해 대상을 받아 감회가 더욱 새롭다고 전했다.

장 씨의 출품작 ‘두 음절에 담다’는 평소 아무렇지 않게 쓰는 ‘그냥’이라는 말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전주 출신인 작가가 광주 지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보고 듣고 겪었던 오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담아냈다.

“우리는 막연하게 할 말이 없을 때나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온전히 다 전달하지 못할 때, 확실한 대답을 내놓기 애매할 때 ‘그냥’이라고 대답하곤 하잖아요. 여기서 착안해 광주의 오월과 연결 짓게 됐어요. 어느 날 이웃에 거주하는, 퇴직하신 윤리 선생님과 5·18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요. 그분이 어떤 얘기를 하다 말씀을 꿀꺽 삼키시는 거예요. 외지에 있던 이들에게 당시 상황을 뭐라 설명할 수가 없더라는 거죠. 제 글 가운데 ‘그냥~ 정말 밉습디다’ 이 부분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담아낸 구절이라고 생각해요.”

장 씨의 글은 본보와 또 다른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2022년 11월1일자 광주문인협회 문학마당에 실린 수필 ‘그대 이름은 도루묵여사’는 마음 안팎으로 바쁘게 살아온 장 씨가 몇 년 만에 글을 다시 시작하게 된 원고였기 때문이다.

“글 쓸 여유도, 형편도 안 됐던 시기에 수필 청탁을 받게 됐어요. 이게 도화선이 돼 글도 꾸준히 쓰고 전시가이드 ‘쉼터’ 잡지에서 2년 째 연재도 하게 됐어요. 광주문학 편집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다시 이 길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게 제2, 3의 인생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생각으로 글 쓰는 데 매진해보렵니다.”/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