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명론(正名論)에서 시작하자 / 장미영

2024년 10월 16일(수) 19:42

장미영 광주남구가족센터 센터장

밀턴은 왜 ‘복락원’을 썼을까. 평자의 말처럼 복락원은 ‘실락원’의 속편에 불과한 것일까? 모든 것을 잃고서 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밀턴은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밀턴은 중세의 마지막 날에 서서 인간이 걸어야 할 시대적 가치를 담은 길을 노래하고 싶었을까. 그가 꿈꿨던 자유는 이제 보편적 가치가 됐다. 그는 끝내 근대를 보진 못했지만, 그가 그토록 노래했던 자유와 평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두 기둥이다. 이처럼 꿈꾸는 자가 새로운 세상을 연다.

어느 기자가 토인비에게 “만약 지구가 멸망하여 다른 별로 이주할 때,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가야 하냐”고 물었다. 토인비는 망설임 없이 “한국의 가족제도를 가져가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하버드 대학교수였던 애드워드 와그너는 “한국의 가족제도야말로 21세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한국의 가족제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우리 가족제도에서 어떤 특별함을 보았을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것을 가지고 있을까.

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애친자 불감오어인 경친자 불감만어인-효경).“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 孝經(효경)’에 전하는 말로써 유교문화권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이다. 소크라테스도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라”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자식은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보편적 가치였음이 분명하다. 토인비는 이러한 보편성 속에서 어떤 특별함을 봤기에 우리의 효 문화에 대해서 그리 애정을 가졌을까.

MZ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가 공정함이다. 지혜로운 세대이기에 기계적 공정함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정함은 태생적으로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에 더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엄마’의 장점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2천년 조선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새로운 부자 관계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수직적 관계는 잘못된 것이고 장점은 없는 것일까?

‘당연(當然)’함을 당연하게.

소금은 짜야 하고 설탕은 달아야 한다. 공자 정명론의 핵심은 ‘답게’에 있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그러면 어버이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는 자식의 가장 큰 조력자이다. 자식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조력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모든 조력이 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조력은 실패로 끝나기에 십상이다. 그중 하나가 ‘자식을 이기지 못하면 자식을 버린다.’라는 교훈일 것이다. 자식은 스스로를 통제하기에 너무 어린 까닭이다. 회초리를 들었던 조선의 어버이가 오늘의 어버이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났던 치르치르와 미르미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수직적 관계에서 “안돼” 할 줄 아는 어버이다움은 수많은 어버이다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또 다른 어버이다움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행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할 수많은 어버이다움은 오롯이 전통 속에 남아있다. 요순시대를 추구한 공자를 비판했던 한비자의 논리는 논리로써만 옳다. 조선의 어버이다움을 찾는 일은 토인비가 보았던 이상적 가족관계 구현의 첫 출발선이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낙원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