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식’ 그리고 새 출발 / 김영순 |
| 2024년 10월 24일(목)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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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의 신화는 나와 같은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시시포스는 신들의 벌을 받아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바위는 정상에 도달하자마자 다시 굴러 내려갔고, 그는 다시 그 바위를 밀어야 했다. 이 고통스러운 반복의 과정은 허무하고 부당해 보인다. 마치 내가 그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삶과 흡사하다. 계속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렸지만, 정작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때론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고 생각했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그러나 알베르 카뮈는 그의 철학적 수필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시시포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해석했다. 카뮈에 따르면, 시시포스는 자신의 형벌이 부조리하고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반복적인 과정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바위가 굴러 내려가는 그 찰나의 순간, 시시포스는 자신이 그 바위를 다시 밀어 올려야 한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선택의 자유를 느낀다. 그는 고통스러운 형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운명에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조리한 상황을 자신만의 의미로 채워간다.
나 또한 시시포스처럼 느껴졌다. 수십 년 동안 끝없이 달리며, 일과 성취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마다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만 했다. 멈출 수 없었고, 멈추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시시포스가 그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릴 때 느꼈던 것처럼, 나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의미를 찾는 순간이 온 것 같다. 내가 왜 달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깊어지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처럼, 기차에서 내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기차 밖으로 나갔을 때, 그는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 앞에서 공포와 혼란에 빠진다. 익숙한 기차 안의 삶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두려움은 당연하다. 나 역시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내가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면, 과연 그다음은 무엇일까? 나의 삶은 다시 바위를 밀어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무의미한 반복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시시포스가 부조리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듯이, 나 또한 이제는 두려움 속에서 나의 삶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기회로 바꾸는 것은 내 선택이다.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나아갈 길을 정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시시포스가 매번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수용한 것처럼, 나 또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설국열차에서 내려 세상과 마주한 주인공이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듯, 나도 이제 그 기차에서 내려 나 자신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기차의 속도에 휘말려 달려온 지난날들과 달리, 이제는 멈추고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거기서 느끼는 두려움조차도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신호일 뿐이다.
시시포스가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자기 운명을 긍정하고 자기 삶을 만들어 갔듯, 나 역시 그동안의 삶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더 큰 자유를 찾아 나아갈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아닌, 나만의 걸음으로, 내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