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고리 권력과 간신배 이야기 / 김일태 |
| 2024년 11월 04일(월) 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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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대통령제는 임기 동안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해 문고리 권력이 활동하기 손쉬운 생태계를 마련해 줘 독선적이고 부패한 정권으로 타락할 수 있다. 반면에 의원내각제는 의회에 내각 불신임권, 내각에 의회 해산권이 주어져 총리와 각료, 의원들의 임기가 불안정해 당내 역학관계로 인해 파벌과 계파가 나타나 정략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역사상 어느 시대나 국가에서도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이 등장해 국가를 망치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 문고리 권력은 군주를 알현하거나 최고 지도자를 대면하도록 문고리를 열어 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비공식적 라인으로 군주나 최고 통치자의 무능함을 감추고 결국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간신배로 국정을 농락했다. 대표적인 문고리 권력은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10명의 중상시(中常侍)인 환관들로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고 왕권을 농락한 십상시(十常侍)이다. 중국 왕조 역사에서 문고리 간신배 부류는 재상부터 환관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에서 존재했다. 간신배는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 시기의 역아(易牙)와 초(楚)나라 평왕(平王)과 소왕(昭王) 시기의 비무극(費無極)으로부터 진(秦)제국의 조고, 당나라 현종 시기의 양국충, 송나라의 매국노 진회, 명나라의 엄숭과 위충현 등으로 비참한 말로(末路)를 맞이했지만 현재도 새로운 유형으로 다시 등장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의 측근들로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간신배를 경계하고 제거하려고 통치자의 경각심을 깨우치고자 하는 기록들이 있어왔다.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제22장 군주의 측근들에 대해서)’에서 군주가 현명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측근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측근들이 능력이 없어 맹목적이면 군주의 선택은 잘못된 것으로 군주가 무능하다”고 힘줘 강조했다. 순자(荀子)의 유좌(宥坐)편은 공자가 노나라 재상 시절에 음험한 자, 사기성을 지닌 자, 거짓말하는 자, 나쁜 것만 기억하면서 박식한 자, 비리를 저지르면서 사익만을 취한 자로 다섯 가지 유형을 지니고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던 간신 소정묘(少正卯)를 처형시켰다고 기록했다. 한비(韓非)도 ‘내저설하편(內儲說下篇)’에서 통치자가 경계해야 할 일을 6미(微)라 하고 “일왈(一曰) 권차재하(權借在下) 이왈(二曰) 이이외차(利異外借) 삼왈(三曰) 탁어사류(託於似類) 사왈(四曰) 이해유반(利害有反) 오왈(五曰) 참의내쟁(參疑內爭) 육왈(六曰) 적국폐치(敵國廢置) 차륙자(此六者) 주지소찰야(主之所察也)”라고 열거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여섯 가지 모략은 첫째 가족이나 측근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 둘째 외세의 힘에 의존하는 것, 셋째 조작과 거짓말을 하는 것, 넷째 국익을 훼손시키면서 계파의 이익을 취하는 것, 다섯째 참과 거짓이 혼돈할 때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것, 여섯째 이웃 나라의 간섭으로 관료를 임명하거나 파면하는 것으로 최고 통치자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국민들은 문고리 권력을 행사한 간신배를 처단하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반드시 사법적 판결로 응징과 처벌이 뒤따른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시대와 나라에 상관없이 문고리 간신배가 활개를 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없애기 위해 권력분립의 견제장치와 공정한 사법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이제 권력의 시간이 아니라 국민이 심판하는 민심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