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의 '문화터치']연극 ‘사형수 김대중’을 보고 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2024년 11월 07일(목) 19:31

포스터가 강렬했다. 오며가며 부딪힌 그 포스터에 자연스레 빨려 들어갔다. 빛을 뿜어내는 형형한 눈빛, 그걸 피할 길이 없었다. 어서 오라, 소리없는 말을 건네왔다. 급기야 막공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 객석에 앉았다. 어둠이 걷히고 무대에 불이 켜졌다. 연극 ‘사형수 김대중’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연극 ‘사형수 김대중’은 김대중의 고난과 신념을 생생하게 무대 위에 그려내며, 민주주의가 얼마나 큰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는지 관객들에게 절실히 전해줬다. 그의 고난은 단지 개인의 고통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투쟁이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무거웠다. 체포된 김대중은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잔혹한 고문과 협박을 받았다. 극중 고문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고통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깊은 충격을 안겨줬다. 수사관들은 그에게 내란을 자백하라고 회유하고 협박하지만,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몸은 피로와 고통에 짓눌려가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빛나며 민주주의를 향한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연극 속 이 장면에서 그가 단지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적인 두려움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김대중은 인간적인 두려움에 시달린다. 연극 속에서 그는 이러한 두려움을 가감 없이 고백하지만, 곧 결연하게 자신의 신념을 다잡는다. 그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고, 이 가치에 대한 헌신은 고난 속에서 더욱 굳건해졌다.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관객으로서 나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각오와 결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에도 김대중은 감옥 생활을 이어가며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켰다. 수감 중에도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가족과 동료들이 신군부에 의해 탄압을 당하고, 아들 김홍일마저 고문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굳건했다. 그가 감옥에서 보여준 의지는 단지 그의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여정은, 훗날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평화와 화해를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헌신은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아 2000년,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이는 그가 겪어온 고난과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최근 한국의 또 다른 인물인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인의 목소리가 세계에 울려 퍼졌다. 한강의 수상은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어 한국의 자부심이 돼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길에 예술과 문학이 더해지는 큰 의미를 남겼다. 이 두 수상은 한국 사회가 이룬 민주주의의 성취와 그 속에서 흘린 눈물과 희생을 전 세계가 기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짜임새있는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 그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이 무대는 마련되지 못했을 터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달려와 짧은 기간 연기합을 맞춰 이뤄진 연극 ‘사형수 김대중’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무대의 위대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가 겪었던 고난과 희생은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인 셈이다.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신념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김대중이 남긴 민주주의와 인권, 그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연극을 보는 내내 그 정신이 전해져왔다. 어렵사리 얻어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됐다. 연극무대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