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별 소리’…작품, 모두의 울림이 되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도슨트 추천 8選 최명진 기자

2024년 11월 18일(월) 19:29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이 순항 중인 가운데, 관람객들과 매일 최접점에서 만나면서 작품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도슨트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도슨트들이 꼽은 추천 작품 8선을 소개한다.

피터 부겐후트作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1전시실: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피터 부겐후트의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연작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의 작품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잘못된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묘사한 브뤼헐의 그림처럼 부겐후트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욕심을 지적한다. 폐기물로 형성된 구조물에 두껍게 쌓인 먼지, 그 덩어리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실체를 말하는 헝겊, 고무줄, 철, 나무, 플라스틱 등은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을 뒤엎는다.

노엘 W.앤더슨作 ‘흑인 연가를 위한 반론’

2전시실: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노엘 W. 앤더슨은 사운드 설치와 함께 세 점의 테피스트리 작업 ‘흑인 여가를 위한 반론’을 선보인다.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을 따와 태피스트리를 제작하고, 영화에서 목사 역을 맡은 가수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에 판소리 북 리듬을 입혔다. 그의 작업에서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는 한국 서민들의 울분에서 비롯된 판소리와 겹쳐진다. 이는 가장 아래서 오는 일종의 투쟁을 연상케 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제작된 케빈 비즐리의 신작 다섯 점은 20세기 초중반 도시로 정착한 미국의 많은 흑인 가족에 대한 기록이다. ‘현장 모듈’ 시리즈는 면화를 뭉쳐 만든 대형 설치 조각이다. 그중 벽면 설치 작업 ‘현장 모듈(신시사이저) I’과 ‘현장 모듈(신시사이저) II’는 평범하고 보편적 소재인 ‘천’으로 노동의 흔적으로 살핀다. 농구 유니폼이나 스웨트 팬츠, 드레스, 이발용 앞치마 일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면화에 깃든 농업·농사·노동의 흔적을 살피게 하며 여기에 결부된 인종적인 유산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해리슨 피어스作 ‘원자가’

3전시실: 겹침 소리(Polyphonies)

해리슨 피어스의 작품 ‘원자가’는 작가 자신의 질병에서 비롯됐다. 뇌 스캔을 경험한 그는 뇌를 형상화한 실리콘 덩어리를 중심으로 이를 자극하는 기계적 관계를 통해 몸의 역기능을 탐구했다. 작품은 타악기 소리에 맞춰 반응한다. 기초가 된 소리는 MRI 스캔에서 따왔다. 직관적인 금속 프레임과 기계 구조 안에 있는 실리콘 덩어리가 반응하고 움직이는 소리는 심장 박동이나 호흡 등 신체 리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람자는 멀찍이 떨어져 10개의 구조물이 만드는 군무를 감상할 수도 있고, 작품 사이를 거닐면서 세세한 움직임에 집중해 볼 수 있다.

비앙카 봉디作 ‘길고 어두운 헤엄’

4전시실: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소금물을 이용한 화학 반응, 여기에 일상적인 사물을 대치해 극적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비앙카 봉디의 작품은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길고 어두운 헤엄’은 하얀 소금 사막과 그 위 이상한 액체로 채워진 연못으로 구성돼 있다. 이 불투명한 연못 속에는 식물이 자라난다. 연못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색색의 헝겊 흔적으로 남은 시체 다섯 구를 발견할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온 이 단상에서 관람자들은 기이한 연못과 생명이 끝난 흔적의 병치를 만나며 현실 너머의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주라 셔스트의 작업 ‘초심자 III: 가장 짧은 밤의 전야’는 자연과 소통하며 고대 전통을 수행하는 영상 속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8명의 벨라루스 난민으로 분한 인물들은 슬라브족 전통 하지 축제 ‘쿠팔라’(Kupala)를 재현한다. 불과 물을 곁에 두고 놀이를 이어가는 영상 속 10대들은 엄숙한 의례를 치루는 듯 긴장감 넘친다. 영상과 함께 송진으로 가둔 나무 기둥과 전시장 바닥에 흩뿌려진 침엽수 잎에 눈길이 머문다. 이는 나무로 들어간 영혼이 나뭇잎을 모두 떨굴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는 믿음을 상징하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미미 박作 ‘발광하는 우리’

5전시실: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미미 박의 ‘발광하는 우리’는 작은 오브제로 연결된 소우주를 상징한다. 각각의 오브제는 서로 인접한 오브제를 통해 작동되고, 무수한 개별적 요소가 모인 별자리처럼 빛난다. 작품에 사용된 사물들은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놀이’를 통해 조합되고 이어진다. 가볍게 여겨지고 지워지기 쉬운 일상적 사물이 한데 모여 형성한 작은 세계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작은 것들을 보듬는 시선을 갖게 한다.

하십 아흐메드의 작품 ‘주식 날씨III’은 글로벌 경제와 날씨를 연결해 어떤 사건으로 나타낸다. 축소한 콜로세움 같은 구조물에 올라서면 둘러싸인 곡선형 모니터에 주식 거래소의 데이터 속 숫자가 오르내리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숫자의 움직임은 발밑에 펼쳐진 모래밭 위를 돌아가는 날개의 속도에 영향을 주고, 이 장면은 다시 관람자 시선의 모니터에 재생된다. 또 다른 날씨 풍경이 화면에 비친다. 작가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주식이나 날씨 등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한편 광주비엔날레 도슨트는 별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선착순 20명 내외로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