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나의 사랑하는 생활 / 수필 - 최미경 |
| 2024년 11월 25일(월) 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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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오렌지 빛 노을을 등지고 천천히 날아 잠들 곳을 찾아 숲으로 드는 새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해 질 녘을 사랑할 것이고 이내 검푸러진 하늘에 반짝이며 나타나는 별을 헤는 생활을 사랑할 것이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조금은 소란스러운 산새 소리에 잠을 깨고 싶다.
바스락거리는 새하얀 옥양목 홑청 이불을 폭 덮고 깊은 잠에 들 것이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잠을 깬 후 동東으로 난 작은 창을 열 것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청량한 바람을 지칠 때까지 맞는 아침을 나는 사랑한다.
배가 출출해져 오면 그날 느낌에 따라 라흐마니노프든 최백호든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커피 물을 올려놓고 오일장에서 사 온 싱싱한 유정란 두 알을 프라이하고 잘 익은 홍로 반쪽을 까서 느긋하게 성찬을 즐기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을 돌아가며 부르고 싶다. 감자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감자 다섯 알을 까서 물에 담가 놓고 우리 엄마 만둣국 맛을 기억하는 친구를 위해서는 만두를 빚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할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작은 풀꽃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풀밭으로 아기별이 쏟아져 내린 것 같은 고마리며 여뀌, 하얀 상아를 품고 있는 진보라색의 달개비를 특히 좋아한다. 아침 햇살 속 성전처럼 고요하고 빛나는 풀밭을 그들과 벗하며 걷는 일상을 사랑한다.
또 하얗게 센 머리에 구부정한 허리, 지팡이에 의지해 찬찬히 걷는 노신사가 좋다. 그리고 억센 손마디로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도 사랑한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착한 사람이 참 좋다.
나는 지금 사는 이 집이 좋다. 창 건너 내 친구 느티나무가 있는 것도 좋고 나무에 새들이 놀러 오는 것을 구경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사랑한다. 아이들이 떠난 텅 빈 집안에서 남편과 나는 거실이라는 큰 강을 사이에 두고 각방을 쓰지만 방해받지 않는 이 삶이 좋다.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그리고 따로 또 같이 살다가 아이들이 집에 와 부산해지는 일상도 사랑한다. 내가 더 늙고 손주가 생기면 이 휑한 거실이 아기 냄새로 가득 찰 그날을 사랑할 것이다. 짬짬이 나는 딸과 함께 여행을 할 것이다. 눈 내리는 날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을 것이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떠나는 먼 여행도 마다하지 않을 생활을 나는 지극히 사랑한다.
<최미경 약력>
▲광주문인협회 회원
▲무진주수필문학회 회원
▲대한문학작가회 회원
▲저서 : ‘찻물을 끓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