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4년 만에 또…총·칼·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 <2024년 12월3일 불법 비상계엄> 윤석열 대통령, 선포 6시간 만에 국회 의결로 해제 ‘1980년 악몽’ 되살아난 지역 민심…퇴진 요구 ‘활활’ 오월단체·시민사회·법조계·대학 등 규탄 성명 ‘봇물’ 안재영·주성학 기자

2024년 12월 04일(수) 20:11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야당 의원과 당직자, 시민들이 헌정유린·내란수괴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피흘려 세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44년 만에 또 총과 칼, 군홧발에 짓밟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를 장악하려던 군부대에 긴박하게 맞선 민주주의의 순간들을 가슴 졸이며 뜬 눈으로 지켜본 광주·전남 시·도민들은 44년 전 오월 영령들이 그랬듯 광장으로 다시 나와 독재자의 퇴진을 촉구했다.

◇‘서울의 봄’ 악몽 재현…불안 고조

지난 3일 오후 10시30분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령했다는 소식을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접한 지역민 대부분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30분 만에 ‘계엄 포고령’ 1호가 발표되고 국회 의사당에 군·경이 모이고 있다는 상황을 전해 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상황이 1979년 12·12 사태와 너무나 겹쳐 보여서다.

지역민들은 자연스럽게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댄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재자와 맞서 싸우자”며 5·18민주광장으로 모여달라는 ‘긴급 호소’ 메시지를 보냈고 실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심판의 시간’ 알린 임을 위한 행진곡

윤석열 퇴진 시국대성회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4일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헌정 유린,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촉구 광주시민 비상시국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개회 선언 후 5·18민주광장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제창한 뒤 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추진위는 전일빌딩245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해 ▲헌정유린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내란 공모, 동조 세력 체포·구속 ▲내란수괴 윤석열 하수인 어용 내각 총사퇴 ▲국회의 윤석열 탄핵 즉각 추진 등 4개 요구 사항을 도출했다.

또한 오는 8일까지 매일 오후 7시 5·18민주광장에서 ‘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5·18기념재단 등 “내란죄 명백”

5·18기념재단과 오월 공법 3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도 긴급 성명을 발표해 “비상계엄 조치가 온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고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를 연상케 하는 느닷없고 황당한 선포였다”고 규탄했다.

이어 “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에 가담한 인사들의 내란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고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오월어머니집도 “합당한 사유 없이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윤 대통령은 또 다시 계엄령을 선포할 수도 있다”며 “1980년 5월 가족을 잃은 우리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윤 대통령의 구속·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변 등 법조계 “법치 파괴·위헌”

광주·전남 법조계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 발령했던 비상계엄을 ‘명백한 위헌 행위’라고 규정하고 퇴진을 요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같은 날 오전 11시10분 광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법적인 공권력 행사”라며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는 경우에 매우 예외적으로 선포돼야 하나 현재 대한민국은 이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던 것을 두고 민변은 “국회의 계엄 해제권 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행위”라며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시도로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지방변호사회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한 명백한 위헌행위”라며 윤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 수사 및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전대·조대 교수·학생들도 ‘충격’

1980년 5·18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광주지역 대학가도 충격에 휩싸였다.

전남대학교 교수회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한 대통령 윤석열을 거부한다”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언에 아연실색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다행히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가결해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고 말했다.

전남대 총학생회도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SNS를 통해 “경각심을 갖고 지금의 상황을 주의 깊게 주시해 혹시라도 학우들에게 미칠 악영향이나 파장이 발견된다면 즉시 알리고 최대한 빠르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민교협(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회) 조선대 지회도 “전날 밤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150분짜리 친위쿠데타는 즉각적인 국민의 저항과 민주주의 수호 의지에 묻혀 한편의 저급한 코미디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안재영·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