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충남 통합 추진 선언, 또 뒤처진 광주·전남 / 이정록 |
| 2024년 12월 10일(화)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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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싫어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초겨울의 호남평야 풍경은 혼돈스러운 정치권과 달리 한적했다. 그러나 천안아산역에 다다르면 경관은 확연히 달라진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 도로를 질주하는 많은 차량, 연담화된 시가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등이 펼쳐진다. 천안아산역-평택지제역-동탄역 구간은 하나의 메트로폴리탄이다. ‘수충권’이 연출하는 도시경관이다.
수충권은 수도권+세종시+대전시+충남을 포괄하는 대도시권이다. 수충권은 대도시권 확대과정의 교과서다. 특정 대도시에 사람과 기능이 몰리면, 도시 범위는 외부로 계속 확장된다. 서울 외곽에 분당, 수지, 판교, 동탄 등 신도시가 생겼다. 신도시 사람들의 원활한 서울 이동을 위해 광역철도도 연결됐다. 거미줄 같은 광역교통망은 사람과 기업과 공장을 수도권 외곽까지 확산시켰다. 그 결과 천안 아산까지 도시권이 확대돼 수충권이 탄생했다.
수충권 출현은 충청지역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반길 일이다. 수도권에 있던 기업과 공장과 사무실이 이전해 오면서 사람들도 따라와 저절로 활력이 생긴다. 땅값도 올라간다. 서울 쪽으로 연결되는 광역교통망만 착실하게 만들어가면 지역 성장은 ‘따 놓은 당상’이다. 수도권에서 발생한 재화와 서비스가 동심원 형태를 그리며 공간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지리적 인접성 덕분이다.
그런 대전과 충청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11월21일 대전시와 충남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 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통합 지자체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연방제 국가의 주(州)에 준하는 권한과 기능 확보, 가칭 행정구역통합 민관협의체 구성, 시·도민 인식 확산과 공감대 형성 노력, 조속한 통합안 마련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선언문의 요지다.
왜 대전과 충남은 통합하려고 할까. 대전과 충남은 서울과 경기와 한 몸이 된 수충권이다. 수도권에서 만들어진 부(富)의 확산효과와 낙수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시간은 지체되지만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이 추동하는 행정통합 열차에 편승해야만 충청지역에 유리한 공간구조를 만들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주도권 싸움을 하려면 ‘몸집’을 키워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분포의 공간구조는 다핵(多核)이다. 서울(인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 6개 대도시권이 주변 지역을 포섭하는 체계다. 수도권이 국토 절반을 차지하고, 5개 지방 대도시권이 나머지 절반을 분점하는 경쟁 구도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이 통합해 대도시권이 되면, 공간구조는 수도권, 대경권, 부경권 3개로 재편된다. 충청권은 3개 대도시권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 또한 분리된 현재의 2개 행정 규모로는 중앙정부에게 권한과 재원을 보다 많이 달라고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몸집을 키운 ‘대구경북특별시’나 ‘부산경남도(특별시)’ 위세에 묻힐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가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의 머리와 가슴을 움직였다. 주도권 싸움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몸집’을 키우는 행정통합 외에 대안이 없다고 인식한 결과다. 대구·경북, 부산·경남이 추동하는 행정통합 열차에 편승해야 충청지역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은 적절하다.
대선시장과 충남지사 이력은 광주시장과 전남지사와 비교하면 달린다. 대전시장은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고, 충남지사는 삼선 국회의원 정치인이다. 그러나 행정통합 논의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달랐다. 시대의 상황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적 리더십’ 소유자였다. 미국 웨스턴미시간대 피터하우스 교수는 ‘사람들이 어려운 도전에 잘 대응하도록 격려하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요구되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방법과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을 그렇게 분류했다.
‘말이 느리고,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진 충청사람들도 행정통합 논의에 선뜻 동참했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지도자 때문이다. 우리 지역민의 정치적 민도(民度)는 높다고 알려졌지만, 반대로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광주와 전남 대응은 또 뒤처졌다. 작금의 비상계엄 해프닝을 보면서, 지도자의 실력과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