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계엄, 그리고 광주시민 / 주홍 |
| 2024년 12월 12일(목)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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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밤 열시 반이다.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뉴스에서 대통령 담화로 발표 중이었다. 포고령 1호는 1970년대보다 더 강압적인 내용들이다. 그 새벽에 가족들과 5·18을 겪은 지인의 안부를 묻게 된 것은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계엄군과 대치하던 광주시민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다 잊은 줄 알았다.
5·18로 기억되는 계엄령. 1980년 5월, 필자는 옛 전남도청 근처에 살았기에 어린 시절 끔찍한 국가폭력과 계엄군에 대한 트라우마가 몸에 즉각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의사당에서 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실시간 중계되는 위급한 상황을 지켜보며 여섯 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한다고 발표를 해도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명상으로 마음이 단련됐기에 분노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긍정의 태도로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1주일 만에 계엄령 선포와 내란의 속내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동시에 국민이 격하게 저항한다. 촛불광장에는 K팝이 흘러나오고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과 풍자의 깃발을 든 젊은이들의 노래와 함성이 물결치고 있다. 거대한 물결, 이제 대한민국은 흥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세대가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과 탄핵투표를 당론으로 거부한 ‘국민의 힘 해체’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100만이 넘은 시민들이 이 추운 겨울 대한민국의 미래를 동시에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민의 물결은 정치인들이 타고 있는 배를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 힘’이라는 국민을 저버린 정당과 윤석열 정권이라는 배가 곧 뒤집힐 것이다.
더 희망적인 것은 이 콘서트 같은 광장에서 남녀 간의 갈등으로 싸우고 헤어졌던 전 연인도 만나고, 젊은 세대가 ‘꼰대’, ‘틀딱’이라 비웃던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이 만나 함께 배려하며 시위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광장 근처에서 따뜻한 커피와 주먹밥과 어묵을 나누며 그토록 꿈꾸던 대동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광장에서 ‘국민 대통합’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 위를 걷고 있다. 광장의 전광판으로 한강 시상식을 본 시민들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교련복을 입고 단팥빵을 먹다 죽은 문재학, 박용준 ‘소년’이 되살아서 말하고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물음에, 소년 열사들이 답했다.
당신의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시공간을 떠나서 나를 만나고 있어요. 그들의 양심의 따뜻한 빛에 불을 켤 수 있게 됐어요.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뤄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됐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연설문 중 나를 울게 한 대목이다.
나는 광주시민이다. 흥하라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