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스코프’…융·복합 시선으로 바라본 존재의 근원 은암미술관 기획초대전 ‘레트로스코프-시간의 연금술’…오는 27일까지 전자기적 장치, 시간의 흐름 통해 만나는 시각 이미지 신형섭·윤성필·한진수 작가, 사물의 실체에 대한 고찰 최명진 기자

2024년 12월 15일(일) 18:54

윤성필作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BK-01’

신형섭作 ‘Liquid Lantern 9’

한진수作 ‘베일을 쓴 진화생물학자의 초상’

어린 시절 비눗방울을 불어 허공으로 날려 보내본 적이 있는가. 그 방울은 터지기 전까지 마치 실재하는 사물 같이 빈 공간을 차지한다. 19세기 말 신지학자인 블라바츠키는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은 아주 작은 원자와 텅 빈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우주에서 실재하는 것 또한 텅 빈 공간이며, 우주 생명체와 사물은 시간으로 형성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새롭게 변형되고 구축되는 시각 이미지로 인간과 사물 존재를 탐험하고 상상해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오는 27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레트로스코프-시간의 연금술’ 전시다. 광주시 지원을 받아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신형섭, 윤성필, 한진수 3명 작가의 설치, 영상 작품 등을 선보인다.

레트로스코프(Retroscope). 과거를 돌이켜본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지된 시간과 원근법적인 시각으로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자기적인 기계 작동’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각적이고도 시각적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윤성필 작가의 뾰족한 원뿔 모양 기둥은 검은색 거대한 평면일 뿐이다. 그동안 굳건하게 구축한 지각적 인식이 혼돈에 빠지게 되는 사례다. ‘전기적 작동’을 통해 생성되는 원뿔 형태의 작업은 우리의 세상이 견고한 입자들로 구축된 세계임을 한순간 와해시킨다.

신형섭 작가의 아상블라주(다양한 재료가 조합된 입체 작품)는 현란한 입방체의 장비 상자, 수집된 오브제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렌즈의 내외부 프로젝트는 천장이나 벽면에 투사되며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작품 속 다양한 오브제는 개인의 삶, 그리고 시대적 문화를 대변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미지들이 융합되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진수 작가의 키네틱 작업은 전기적 장치와 시간의 흐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장자의 무위(無爲)론을 연상시케 하는 그의 오브제 속 물방울은 어린 시절 비눗방울에서 연장된 것일 수도 있고,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원자와 텅 빈 공간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조관용 미술평론가는 “이번 전시는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전기적 장치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융복합의 시선으로 거시·미시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그 탐험의 시간에서 만나는 미학적 존재는 원근법적인 시각 이미지로 재단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사물의 실체와 생명의 근원을 추론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