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발을 놓치다 / 이지담

2024년 12월 15일(일) 18:58

이지담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신고 뛰어 보고 달려도 보고 얼굴을 닦아주며 반기던
밭고랑 위에 가지런히 나를 앉혀 둔 채 맨발로 일하던
하루 일이 끝나면 발의 흙을 탈탈 털고 집에 가자던
바다 건너 세상 향해 배를 띄우듯 허공을 가르며 내게 날개 달아주던 그

숨을 곳도 떠날 곳도 없는 섬에서
나만이 어디론가 데려다줄 수 있을 거라던

예비검속에 걸려 유치장에 연행된 후에도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검은 상복은 입지 않게 해주겠다던 그였다

총부리에 넘어져 어디론가 끌려가던 그의 발을 놓쳤다
(시집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흔들려서 좋았다’, 문학들, 2024)

[시의 눈]

한 켤레 신발은 그 사람의 편력입니다. 어머니는 뒤축 꿰맨 고무신을 둑에 단정히도 놓아두고 뙤약볕에 감자밭을 매셨지요. 내가 진학할 땐 검정 운동화를 사주셨구만요. 4·19 때 난 신을 벗어쥐고 죽자사자 뛰었지요. 경찰을 피해 나주 이모한테 가던 때였네요. 얼마 전 계엄이 선포됐을 때, CCTV와 시민들이 찍은 국회 안의 영상에서 계엄군 신발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어떤 병사가 떨어뜨린 걸 주워 달리더군요. 철모와 마스크로 가렸지만, 그중 병사 한 명을 어머닌 제 자식이란 걸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긴 다리와 발짓이 눈에 익었지요. 화면 전환으로 놓쳤습니다만, 어머니는 워커 속 발이 떠올라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의 발을 기억했을 테지요. 이지담 시인은 나주에서 나 광주대대학원 문창과를 졸업하고, 2003년 ‘시와사람’, 201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고전적인 저녁’(2011), ‘너에게 잠을 부어주다’(2020)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내면을 촘촘히 다스리며 대상의 굴곡과 파장을 치열하게 다듬어내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