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내게로 오는 길 / 이혜선

2024년 12월 22일(일) 18:06

이혜선

이삿짐 정리하는 책장에서 만난 그대, 까만 점 하나
확대경을 들이대고
어디서 온 뉘신지 물어본다

밤길 가다가 만난 먼 하늘 불빛 하나
망원경 들고 서서
어디서 내게로 오시는 뉘신지 물어본다

침침한 눈에 불 밝혀주는 다초점렌즈
거꾸로 내 몸에 들이대고
그대 어디서 아직도 오고만 있는지 물어본다

어느 별 어떤 불랙홀에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지,
그대 내게로 오는 길을 잃고
억겁을 찰나로 불타고만 있는지,
(시집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 문예바다, 2024)

[시의 눈]

어디서 오는 뉘신지를 묻는 확대경에도 망원경에도 난 보이질 않습니다. 답답한 노릇이군요. 내게로 오는 길은 요즘 정국처럼 정면으로 면벽되듯 아득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습니다만 눈밭을 함께 뛰던 복실이를 기억하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참 막다른 숲속이군요. 칠흑 밤길에 만난 불빛이 또 뉘신지 묻습니다. 어떤 데서든 난 읽고 쓰며, 까만 구두점을 회색 물음표로 바꾸려 합니다. 오는 길을 묻는 자가 깊은 설원에 묻힐 때까지 난 알은체 않고 지나칩니다. 그래, 눈에 덮인 그가 날 끝까지 발굴해 낼 수 없도록 말이지요. 이혜선 시인은 경남 함안에서 나 동국대 국문과와 세종대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1996), ‘흘린 술이 반이다’(2019) 등을 냈습니다. 그는 내면 사랑과 그리움을 끌어와 심안에 젖어드는 법문 같은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