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운명따라 흐른 화업 60년 ‘시대의 몽타주’로 마주하다 신학철 화백 회고전…내년 3월30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실험미술부터 민중미술까지 시대적 통찰 담아낸 작품세계 과거·현재 아우른 회화작품 89점·아카이브 50여점 한자리 최명진 기자

2024년 12월 29일(일) 19:33

‘한국근대사(韓國近代史)-종합’(1983)

‘모내기’(1993)

‘변신 3’(1980)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신학철 화백이 광주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눈길을 끈다.

내년 3월30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1,2전시실에서 진행되는 민주인권평화전 ‘신학철 - 시대의 몽타주, 60년 회고전’이다.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신 화백은 격동의 시대 속 서민들의 삶과 이상세계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60여년 간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망라했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회화 89점, 아카이브 50여점을 선보인다.

신 화백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일원으로 활동하며 실험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0년대에는 사진 몽타주와 콜라주를 활용해 산업사회와 대량소비사회가 초래한 물질 숭배와 현실의 단면을 드러냈고 1980년대 이후에는 포토리얼리즘을 통해 역사적 실체를 화면에 담아내며 사회적 이슈를 예리하게 다뤘다.

그의 작품세계는 시대적 맥락 속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전시는 크게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 ‘망각된 역사의 소환’, ‘시대를 위한 기념비’ 3개 섹션으로 나뉜다.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에선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경향과 다양한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초기 작품을 모아놨다.

1965년 대학 재학 시절 그린 ‘정물’은 회갈색의 차분한 색감 속 독특한 표현방식이 돋보인다. 동물의 두개골과 질박한 옹기 등 당시 정물화와는 차별화된 소재와 나이프를 활용한 거친 질감이 특징이다. 사물을 실로 감아 연결해 하나의 오브제로 재탄생시킨 ‘부활’, ‘변신’ 시리즈도 선보인다.

‘망각된 역사의 소환’에선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 연작이 전시된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급변한 한국사회의 흐름과 함께 거대 담론에서 개인 서사로 전환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수직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하나의 덩어리 형상의 연작들은 당시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오롯이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위한 기념비’ 섹션에서는 중산층과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격동기 역사 속 그들의 삶을 조명한 작품을 전시 중이다. 서민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고향 풍경과 같은 이상향을 담은 작품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작가의 예술세계에 큰 분기점이 된 작품을 조명하는 특별섹션도 마련됐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며 제작된 ‘한국현대사-초혼곡’,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억압과 예술품 검열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화제가 된 작품 ‘모내기’가 관객들을 맞는다.

피투성이로 일그러진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국 역사에 굽이굽이 이어진 민중의 항쟁을 표현한 ‘한국현대사-초혼곡’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약 30년 만에 바깥나들이를 하게 된 ‘모내기’ 작품은 신 화백이 1993년 원본을 재제작한 것이다. 1989년 국가보안법에 따른 이적표현물로 몰수된 작가의 ‘모내기’ 원작은 유죄 판결을 받아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공개한 가로 20m 대형작품 ‘갑순이와 갑돌이’를 비롯해 지난해 완성된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까지. 오랜 시간 폭력과 파괴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며 현대사회의 시대상을 꾸준히 드러내오고 있는 신 화백의 작업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