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길 / 수필 - 송광임

2025년 01월 06일(월) 18:50

속속들이 가을이 거리에 들어왔다.

가로수 은행잎 우수수 앞다투어 가벼운 녀석들은 휘몰아쳐 돌고 흩어진 녀석들은 자동차에 올라앉아 가을을 실은 차도, 차에 올라탄 가을도 영문도 모른 채, 저만치 저 멀리 멀어져갔다.

한참 후 낯선 거리 어느 한적한 곳에 내려앉았다.

그곳에도 몸을 털어내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그곳에도 막 길 떠나려고 몸을 날리는 녀석들이 있었다.

새로운 곳을 향하여 바람에 몸을 얹은 채 긴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 갈지 제대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끝내 자퇴서를 쓰고 돌아오는 길, 나도 아이도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내 고집이었다. 일단 등록부터 하자고 큰소리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살살 어르기도 하며 세상 슬픈 모습으로 회유했으니까. 아이는 대학에 가는 것은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거라고 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전문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후 취직하는 게 낫다고 했다. 진로 상담교사도 여러 차례 상담 후 뜻이 확고하다면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까지 했다며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

나는 대학을 통하지 않고 가는 길이 얼마나 있겠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지못해 한 곳에 원서를 썼다. 아이의 뜻과는 무관하게 전망 있어 보이는 대학 OO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달포도 채우지 못한 채 휑한 캠퍼스를 지나쳐 정문으로 되돌아왔다. 수능 선물함이 채 포장지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는 주관이 뚜렷하다거나 개성이 강하다며 에둘러 말하고 또 누군가는 부모 속도 모르고 자기 고집만 피운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자녀 문제에 있어 그런 걱정과 충고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상담사는 자녀를 믿어주고 기다려 주라고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조급증이 생겨나 자꾸 잔소리만 하게 되었다.

글자를 깨치기 시작할 때부터 ‘공부’는 오롯이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길만 생각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으로 가는 길은 애초부터 짜놓은 각본처럼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그래서 내 친구가 학교 가기 싫다는 아들을 중학교에 진학시키지 않고 홈스쿨링을 시켰을 때 걱정이 되었다. 나의 상식과 고정관념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어 이해되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친 학교 자모는 남의 속도 모르고 OO는 어느 대학에 갔냐며 캐물었다. 또 누구, 누구는 00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묻지도 않은 정보까지 흘리며 심란하게 만들었다. 스무 해 가까운 시간과 들인 노력과 지원한 교육비가 아깝고 허무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도 타인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와닿지 않았다. 이미 다녀간 길 위에서 그쪽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다 진창이 되고서야 발을 빼는 격이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고 뒤돌아보며 투덜댔다.

유난히 길눈이 어두운 나는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분기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초행길에서는 능숙한 운전자도 분기점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 차량에 혼잡한 도로에서는 사고율도 높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안해 나들목에 원하는 방향을 미리 알려주는 고속도로 노면 위의 색깔 유도선을 만들었고, 이 개발로 인해 사고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직진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분홍, 파랑, 초록, 주황색을 따라 미리 차선을 변경해서 가면 헤매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 우리네 인생길에도 목적지를 향한 뚜렷한 유도선이 있다면 깜빡이를 미리 켜고 속도도 줄이고 때론 쉬기도 하며 쉽게 방향을 찾을 수 있을 진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얼마나 가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오직 애벌레 기둥을 향해 올라갔다. 밟고 올라가느냐 발밑에 깔리느냐….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고 장애물일 뿐이었으며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위협을 기회로 바꾸었다.’ 그때의 나는 호랑나비처럼 애벌레를 따라 기둥을 향하라고 아이에게 종용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정석이라고 다그치며 그저 꼭대기만 오르면 된다고 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은 애벌레 기둥에서 내려와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찾았다. 어려서부터 본인이 좋아하는 전문학교 특수 동물학과에 들어갔다. 학교생활을 너무나 즐겁게 하는 게 눈으로 보였다. 2년을 공부에 매진하더니 그렇게 거부하던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편입했다. 다른 아이들이 가니까 무조건 4년제만 고집한 나와 다르게 아이는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처럼 본인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학문을 탐구하다 보니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호랑나비 애벌레가 자기의 몸 안에 있는 날개가 펴질 때까지 고치 속에서 기다렸다가 하늘을 날 듯, 아이도 날개를 펴고 자신이 나아 갈 길을 찾아 훨훨 날아가기를 소원한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송광임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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