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별책 / 배옥주

2025년 01월 12일(일) 18:51

수성도서관 어린이실
시각장애소녀가 아트북을 만드네
책장마다 별을 오려붙이네
촉각 그림책에 별이 돋네

민들레가 노란 별똥을 쌌어요 저녁 짓는 엄마 냄새 같아요, 피노키오 거짓말은 또 일 센티 자랐어요 토성이 낀 귀고리처럼 달랑거려요, 물병자리로 이사간 주머니도서관에서 도깨비들이 줄넘기를 하네요 혹을 뗀 혹부리 할아버지 혹보다 큰 웃음주머니에서 함박별이 쏟아져요

소녀의 눈빛이 총총, 그림책에 박혀 있네
이야기를 넘길 때마다 야광별이 뜨네
사다리를 타고 오른 아이가
책속에 가득 열린 별을 따네
(시집 ‘오후의 지퍼들’, 서정시학, 2012)


[시의 눈]

푸른도서관 어린이실에 민서가 촉지용 그림책을 만듭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별을 조심조심 오려 붙이네요. 까만 오목선을 따라 가위질을 합니다. 선 밖의 우주를 잘라내지 않으려 주시하지만 볼 수 없습니다. 별은 밤하늘에만 박힌 게 아니지요. 아이의 별책이 푸른 하늘에 펼쳐집니다. 아빠가 사준 별나라 스케치북 첫 장에 물병자리별 빛을 붙입니다. 그러자 도깨비들까지 별에 다다르려 해요. 혹을 떼려는 혹부리 할아버지가 웃음을 쏟아내는군요. 민서는 가만가만 사다리에 올라 혹을 따듯 별 하나를 오립니다. 별이 쏟아져 별책이 다 차면 별책부록이 필요하단 걸 물론 알고 있지요. 새로운 별로 가득찰 스케치북의 새장을 펼칩니다. 새하얀 눈밭에 엄마 아빠는 함박별이 수놓아지길 기다리지요. 배옥주 시인은 부산에서 나 2008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했고, 시집 ‘The빨강’(2017), ‘리을리을’(2024)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혼란을 비집는 감각으로 삶의 온기를 빚어 우리 내면깊이 끼쳐주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