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의 지혜 / 진호림 |
| 2025년 01월 19일(일)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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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정권 교체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오히려 한국이 배워야 할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
보츠와나에서는 지난해 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독립 이후 58년 간 집권했던 보츠와나민주당(BDP)이 야당에 정권을 내어 줬다.
보츠와나는 총선에 승리한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에 선출된다. 제1 야당인 ‘민주적 변화를 위한 우산당(UDC)’이 61석 중 36석을 차지한 것이다. 당을 이끈 두마보코가 대통령에 선출됐다.
신임 두마보코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변화의 주체임을 강조하며, 함께 새 날을 맞이하자고 했다.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한 마시시 전 대통령에게도 사랑과 존중을 보내줄 것을 호소하며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보츠와나는 일찍이 민주주의를 뿌리 내렸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비견될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틀라(Kgotla)는 오늘날 보츠와나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고틀라는 지역 공동체 내 의사 결정 기구다. 그 핵심은 협상과 합의. 이른바 ‘끝장토론’을 통해 집단 간 관할 구역 획정, 식량 배분 등의 중요 사안을 결정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전통과 함께 지도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오늘날 보츠와나가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성공요인이다.
초대 세레체 카마 대통령은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스스로 추장 승계를 포기하고 대통령제를 도입하며 지금의 국가 체제를 구축했다. 부패를 척결하고 시장 친화적인 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그의 뒤를 이은 마시레 대통령은 고틀라를 현대 정치에 접목하며 사회안정을 꾀했다. 청렴한 정치의 본보기를 보여줬으며, 경제의 부흥을 이뤘다.
3대 모가에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모 이브라힘 상을 수상했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HIV 등 글로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이안 카마 대통령은 평소 농부를 희망했다. 그가 받은 퇴임 선물은 닭 수백 마리, 소 100여 마리, 이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트럭 1대. 그의 소박한 의지에 대한 국민들의 진심 어린 보답이었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보츠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였다. ‘길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황무지’라던 보츠와나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됐다. 아프리카에서 자원은 저주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보츠와나는 예외였다.
보츠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7천350달러로 세계 64위다.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와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된 다이아몬드가 창출하는 국부를 바탕으로 경제는 고속 성장을 이뤘다
사회는 안정됐다. 대학까지 실시되고 있는 무상교육은 이 나라의 힘이 됐다.
그 힘을 바탕으로 보츠와나민주당(BDP)은 58년 간을 집권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보츠와나의 국가청렴도가 크게 하락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3년 국가 별 부패인식지수서 보츠와나는 59점으로 39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63점으로 32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츠와나의 국가 청렴도는 우리보다 몇 단계 앞서 있었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모범 국가, 보츠와나의 청렴도가 우리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COVID-19 이후 불어닥친 경기침체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다이아몬드 판매가 줄면서 실업률이 급등했다. 청렴도는 떨어지고, 민생은 악화했다.
국민들 사이 불만의 소리는 선거에서 표로 나타났다. 유권자들은 집권 세력을 심판했다. 그 결과가 정권교체다.
정치는 그런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성과로 평가 받는 과정이다. 성과가 좋으면 재 집권하고, 그렇지 못하면 정권을 내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권 교체와 함께 맞은 새해 첫날 보츠와나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자연 현상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보츠와나의 화폐 단위인 풀라(Pula)와 테베(Thebe)는 ‘빗물’과 ‘빗방울’을 뜻한다.
비는 곧 풍요의 상징이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