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팔리다’란 말이 무감각한 나라 / 김선기 |
| 2025년 01월 23일(목) 1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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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쪽팔리다’라는 말이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사실, 이 말이 우리 사회 깊숙이 인식된 건 지난 2022년 9월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48초간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후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게 그 시발이다. 이른바 ‘날리면 사건’이다. 그 후 ‘쪽팔리다’란 말은 어른·아이 가릴 게 없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쪽팔리다’라는 말은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의 속어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유행처럼 확산하더니, 급기야는 국어사전에까지 수록되었다.
그렇다면 ‘쪽팔리다’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하나는, 일본 사람을 속되게 부를 때 ‘쪽바리’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됐단 주장이다. 즉 ‘쪽바리’가 ‘쪽바리다’로, 다시 ‘쪽팔리다’로의 변형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어학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또 하나는 ‘쪽팔리다’라는 말은 ‘쪽’과 ‘팔리다’의 합성어란 견해다. 여기에는 대다수 학자가 의견을 같이한다. ‘팔리다’라는 낱말은 ‘팔다’의 피동형이다. ‘쪽’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 보면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쪽팔리다’라는 말은 ‘얼굴이 팔리다’를 어원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얼굴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자어에서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에는 면(面), 안(顔), 용(容) 등이 있다. ‘면’은 얼굴이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내는 의미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쪽팔리다’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체면이 깎이다’라는 협의적 개념이 아닌,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까지를 나타내는 광의적 개념을 지닌다.
과거에 ‘쪽’이라는 말은 얼굴을 세는 단위로 쓰였다. 책 페이지를 세는 말에서 일면(一面), 이면(二面)이라고 썼는데, 요즘은 한쪽, 두 쪽으로 세고 있는 데에서 ‘면’과 ‘쪽’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때의 ‘쪽’이라는 말은 얼굴과 상통한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단한 거물들이 다 모인 것이다’라는 말에서 ‘면’은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다. 그러니까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를, 물건을 세는‘쪽’으로 바꾸고 비하하여 ‘쪽팔리다’라는 형태의 속어가 됐다는 게다.
원래 ‘창피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좋지 않은 일로 여러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지게 되어 기분이 몹시 상하다’라는 말이다. ‘쪽팔리다’라는 말 역시 ‘창피하다’와 같은 뜻으로써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정초에 무슨 국어 공부냐?’라는 지적이 있을 법하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 이가 많을 줄 안다. 그래서 꺼낸 주제다. 게다가 일부 정치인은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우리를 더욱 쪽팔리게 하고 있잖는가.
이번 사태를 두고 한남동 성전(聖戰)이니, 아스팔트 십자군(十字軍)이니, 심지어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까지 끌어들여 아귀도 맞지 않는 궤변을 배설하고 있다. 정말, 얘들 보기에도 쪽팔리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