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명력, 내면 본질 찾아가는 여정 담고 싶었죠” 강종열 초대전 ‘동백, 시간의 얼굴’…5월25일까지 전남도립미술관 ‘상흔의 기억’ ‘생명력 희망’ ‘멈춰진 시간’ ‘시간의 얼굴’ 주제 자연의 무게·아픈 역사의 흔적·인간의 존엄, 화폭에 담아내 최명진 기자

2025년 04월 03일(목) 18:25

작품 ‘camellia’ 앞에 선 강종열 작가

‘White Camellia’

‘이다(Ida)의 형제’

‘여순사건’

물감의 두터운 마티에르와 오묘한 색상의 조화, 그림 속 인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까지. 강종열 작가의 작품세계는 어느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다.

지난달 27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남도의 역사와 풍경은 나의 예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며 “그림 속 대상의 내면이 품고 있는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동백꽃’ 화가로도 유명한 그는 여수 출신으로 남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을 그리며 자연과 인간관계를 성찰해왔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 50년 간 끈질기게 그려온 동백꽃 그림부터 자신의 삶의 원천인 여수 풍경, 한국 현대사의 아픔인 여순사건을 조망한 그림 등 소재와 표현기법 또한 모두 다르다.

전시는 총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강렬한 색감과 이국적인 풍경 속 인물화를 중심으로 한 ‘상흔의 기억, 동티모르’가 전시 초입을 채웠다. 아버지의 다리를 꼭 붙잡고 있는 어느 한 소녀의 큰 눈망울부터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들, 앙상한 뼈만 남은 빈곤한 이들의 모습까지. 산타크루즈 대학살과 독립 이후의 혼란을 겪은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이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겼다.

두 번째 섹션 ‘생명력 희망, 그리고 동백’은 여수의 동백숲과 바다 풍경, 작가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다양한 소재들이 주를 이룬다. 오랜 시간 천착해온 ‘동백’이라는 소재는 작가 자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단순한 미적 대상을 넘어 고난 속에서도 강렬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이 투영돼 있다. 특히 하얀 빛의 동백꽃은 여러 색을 혼합해 그려낸 결과물로, 어렴풋한 신비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섹션에선 여순사건을 주제로 강렬한 감정과 기억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한데 모았다. ‘멈춰진 시간’을 주제로 한 이 섹션은 지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기록의 의미를 지닌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케 하는 가로 약 13m의 대작 ‘여순사건’은 고향의 아픈 역사를 그려낸 작품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은 지역의 많은 이야기가 화폭에 담겼다.

마지막 섹션 ‘시간의 얼굴’은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작가 작업실 뒤편에 살던 한 어부 ‘조씨영감’의 삶을 그린 연작 총 10점을 만나볼 수 있다. 1995년부터 약 5년 간 이어진 ‘조씨영감’ 연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인간을 내밀하게 들여다본 작가의 표현주의적 화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소박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일련의 그림들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오롯이 느껴진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우리 역사와 고통을 담아내는 작업에 소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흔한 풍경일지라도 여기에는 자연의 시간과 생명,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깃들어있다. 붓터치 하나하나에 지역의 삶과 내면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작업을 앞으로도 지속해가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5월25일까지.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