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비장애 경계를 넘어…‘고유한 몸’과의 관계 맺기 ●ACC 개관 10주년 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리뷰 최명진 기자 |
| 2025년 04월 21일(월) 1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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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적은 없어도 각자의 몸짓과 말하기 방식, 삶을 향한 독특하고 드문 태도를 나눴다. 계단과 언덕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친구들의 몸은 내 몸의 한 곳에 새겨졌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나를 돌본 사람들, 내가 만나고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배우고 무대에 오른 여러 개개인의 몸이 모두 연결돼 내 안에 있었다.”
전시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김원영 작가의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든 몸이 지닌 고유한 힘과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전시 주제인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김 작가의 책 내용에서 발췌된 것으로, 장애 유무와 관계 없이 우리 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또 변화한다는 의미를 내비춘다.
장애를 향한 시선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진행 중인 이번 전시는 ‘배리어 프리(장애인 접근성)’를 단순한 보조 장치가 아닌 감각적 실천이자 예술적 언어로 삼았다. 몸 그 자체의 감각과 관계 맺기에 중심을 둔 다양한 융복합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참여자로 초대한다.
전시는 국내외 작가 5인(또는 팀)이 참여한다. 무장애·장애·참여·상호작용 예술을 연구해오고 있는 이들로, 장애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회화, 사운드, 조각, 융·복합 작품들을 선보인다.
먼저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인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가 새로운 촉감의 전시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거대한 코끼리 형상과 벽면에 부착된 드로잉 작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눈으로 보고 촉감을 느끼며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만화영화 세일러문 목소리로 알려진 최덕희 성우 등이 음성해설로 참여한 영상 작품도 발길을 이끈다. 아야 모모세 작가의 ‘소셜 댄스’다. 남성과 여성이 수어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손을 잡는 행위’는 보다 다양한 의미로 드러난다. 언어의 부재를 극복하려는 손의 움직임은 말보다 더 섬세한 권력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관객은 ‘수어’라는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권력과 감정의 흐름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녹는점’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의 신체와 동일한 온도의 물을 참여자에게 건네 마시게 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그 자리에 없더라도 태블릿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기 체온을 전달한다. ‘누군가의 체온을 마시고 있다’는 생각은 어색하면서도 미묘한 불쾌감을 일으킨다. 물을 마신다는 익숙한 행위 속 숨겨진 낯설음은 몸과 몸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경험하게끔 한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통해서만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인터렉티브 참여형 작품 ‘아슬아슬’도 인상깊다. 작품 참여자의 신장, 걷는 속도, 기울기 등에 따라 두 사람이 든 장대 속 은은하게 불을 밝힌 불빛이 꺼지기도, 환하게 빛나기도 한다. 참여자들은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하고,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며 서로에 대한 배려를 깨닫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어린이를 위한 상설 교구재, 전시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촉지도, 점자책, 오디오 가이드 등이 비치돼 있다. 아울러 접근성 매니저가 상시 근무하며 전시장 내 안내 전반을 도울 예정이다.
김예원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배리어 프리’ 자체가 하나의 상호작용적 예술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 모든 관람객들이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6월29일까지 ACC 복합전시 6관에서 진행된다.
/최명진 기자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