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로 피어난 ‘소년이 온다’, 오월 기억을 잇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특별전 ‘소리 없는 목소리’…6월22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 국가폭력·차별 앞 침묵했던 순간들 영상·설치·낭독 퍼포먼스 등 통해 억눌린 상처의 기억 예술로 마주해 최명진 기자

2025년 04월 24일(목) 20:08

왼쪽부터 김홍빈 작가, 정현주 관장, 심혜정 작가, 유재현 기획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광주의 기억을 새롭게 전하는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특별전 ‘소리 없는 목소리’가 25일부터 6월22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전시는 유재현 독일 Art5예술협회 총괄디렉터와 정현주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관장이 공동 기획했다.

전시 주제 ‘소리 없는 목소리’는 국가폭력과 차별 앞에서 말할 기회를 빼앗긴 이들의 침묵을 상징한다. 이는 말로 표현되지 못했던 상처와 억눌린 기억을 예술을 통해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3년 같은 장소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기반으로 관람객 참여 요소를 보강해 낭독 부스와 다국어 번역 도서, 퍼포먼스 워크숍 등 보다 확장된 형태로 구성됐다.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함께 담았다. 영상에 영어 자막을 덧붙이고, ‘소년이 온다’ 12개국 번역본을 마련해 5·18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 입구에는 김홍빈 작가의 ‘소년이 온다’ 설치 작업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5·18 민주광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 블루프린트 천을 덧씌운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영정사진조차 없이 떠도는 무명 열사들의 빈자리를 표현한 것으로, 이들이 예술을 통해 다시 기억되길 바라는 추모의 의미를 담았다.

심혜정 작가의 작품 ‘어린 새, 소년’은 오월 어머니들의 실제 음성과 함께 엮여 재생되고 있다. 흐릿하게 시작해 점차 선명해지는 영상은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관객들이 5·18의 기억과 아픔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관람객이 직접 목소리를 남길 수 있는 낭독부스도 마련됐다. ‘소년이 온다’ 각 단락을 따라 읽으며 카세트 녹음기 또는 QR코드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기억을 함께 구성하는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25일 개막식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강애심과 연극배우 권지숙이 참여해 ‘소년이 온다’ 6장 구절을 낭독한다. 문학과 현실, 목소리와 육체 사이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장면으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전할 예정이다.

6월4일에는 오월 어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 참여형 워크숍이 열린다. 참가자들은 함께 소설을 낭독하고, 어머니들이 간직해온 신문 스크랩, 사연이 깃든 물건 등에 대해 이야기나누며 오월의 생생한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정현주 관장은 “세 작가의 시선을 드러내는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이미지와 텍스트가 엮어내는 겹겹의 두터운 기억을 선사할 것이다”며 “이러한 예술적 실천이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목소리를 다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