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오, 깜짝이야 / 박해달

2025년 05월 06일(화) 19:57

박해달

상추를 씻는다

흐르는 물 너머
상춧잎을 따라왔던 달팽이

툭~ 떨어진다

상추를 놓고
저녁 식탁을 서성이다
화단으로 나선다

비에 씻긴 풀잎 사이로
달팽이 돌아간다.

(시집 ‘꽃인 줄 모르고 핀다’, 도서출판 상상인, 2023)

[시의 눈]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각기 자신의 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풍요를 겪고, 결핍을 겪는다. 고유한 길 위에서 생명의 잔치를 부여받고 혹은 단절과 소멸을 겪는다. 명암처럼 이 둘은 열림과 닫힘의 공간으로 나뉜다. 삶의 화면은 활기인가 침체인가의 분위기로 양분된다. 달팽이는 연체동물로 느릿느릿 저 만의 속도로 길을 걷는다. 두 개의 더듬이는 정확히 방향을 읽는다. 보편적 시선으로 볼 때 달팽이는 움직이는 동물 가운데 최저속도이다. 현대적 삶은 심리적·철학적 시간보다 계량화·계측화된 물리적 시간을 쫓는다. 속도주의에 편승하길 원한다. 현대적 삶의 흐름이 가속도를 내기 때문에 갑남을녀 다들 동일한 시간의식에서 예외가 아니다. 남보다 한 발짝, 이 시간의식 때문에 가속도를 부추기게 마련. 그러다 속도에 억압당한 채 시간의 폭력성에 시달리는 객체로 나앉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제야 속도에 반발하고 저항적 속도의식을 갖는다. 삶의 모순율이다. 달팽이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구도자이다. 빠름의 길 위에서 많은 것을 잃고 산다. 성찰의 여유를, 참된 풍요와 깊이를 놓쳤다. 잠시 길 잃은 달팽이가 자신의 길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우리가 놓친 가치들을 다시 회복하는 의미일 터. 그 장면을 시인이 간과할 리 없다. <윤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