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품격과 유머 / 김영식

2025년 05월 22일(목) 19:43

김영식 남부대 교수·웃음 명상전문가

한반도의 봄은 이제 뜨거운 여름을 향하고 있다. 이번 TV 대선 토론을 보며, 건설적인 논의보다 말꼬리 잡기와 상호 비방에 치중하는 후보들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띄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실망과 피로감만 안겨준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유머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도자의 유머는 단순한 재치를 넘어 국민과 소통하는 따뜻한 다리가 되어주는 경우가 많다. 세종대왕께서는 어느 날 신하가 보고 문서를 잘못 읽었는데, 세종은 웃으며 “귀도 잘 씻어야겠다”라고 말했다. 신하가 창피해하며 다시 또박또박 읽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백성과 신하를 편하게 대하려 노력했다고 하는 일화다. 세종의 유머는 배려와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 많이 있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선거 때 늦잠을 잘 자는 처칠에게 노동당 후보가 “늦잠꾸러기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저는 새벽 4시에 못 일어납니다”, “예쁜 마누라와 살다 보니 늦잠을 잡니다. 저도 못생긴 마누라와 결혼 했다면 4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많은 정치적 역경을 겪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한 연설 도중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제가 너무 밝은 이야기를 해서 전기가 부담을 느낀 모양입니다”라고 말해 긴장된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꾸었다. 또한 “난 세 번 죽었다가 네 번 살아났다”라며 자신의 정치적 고난을 유머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격식을 허무는 소탈한 유머로 국민과의 거리를 좁혔다. 공식 행사에서 “대통령인데 떨리네요”라고 말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지”라는 자조적 유머로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자신의 키가 큰 것을 두고 “대통령은 키가 충분히 길어야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높이에 도달할 수 있다”라며 웃음꽃을 피웠다고 한다. 이런 순간들은 국가가 어려울 때 일수록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감성의 메마름도 함께 가져왔다. 차가운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의 웃음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속 이모티콘이 진짜 웃음을 대체하는 시대가 돼 버렸으니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 뒤에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OECD 국가 중 최저 행복지수라는 아픈 현실이 숨어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바쁜 일상에 쫓기며 이웃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어진 것이다.

지도자의 유머는 이런 메마른 사회에 단비와 같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난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연설로 냉전의 벽을 허물었고, 만델라 대통령은 인종 갈등 속에서도 따뜻한 미소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하나로 묶었다. 진정한 리더십은 때로는 무거운 정책보다 가벼운 유머 한 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더 깊이 움직이게 한다.

다가오는 대선, 우리는 메마른 우리의 마음에 한 줄기 단비처럼 역사에 남을 유머 있는 지도자를 간절히 원한다. 단순히 경제 지표를 높이는 사람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차가운 알고리즘 사이에서 인간미 넘치는 웃음으로 국민과 호흡할 수 있는 따뜻한 리더가 필요하다. 중국 주자학의 대가 주희(朱熹)의 말처럼 “웃음은 천 냥의 금보다 귀하다”는 진리를 아는 지도자,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의 소중함을 아는 지도자가 진정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정보와 물질을 얻었지만, 정작 잃어버린 것은 서로의 미소와 따뜻한 손길이다. 지도자의 유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닌, 메마른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웃음의 씨앗이 된다. 아직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 그것이 바로 유머와 웃음의 힘이다. 우리는 국민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미소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그런 지도자와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는 진정한 선진국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들고 싶다. 호미 한 자루로 밭을 갈고, 괭이 한 자루로 산 넘어 고랑을 팠던 우리 조상님들이 손을 흔들며 “그래 느그들 잘~~ 살고 있구나”라고 칭찬하실 그런 삶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