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저물녘 노을인가 새로운 새벽인가 / 조영인

2025년 08월 19일(화) 19:52

조영인 출판인·조인애드컴 대표

광주에서 20년 넘게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1980년대 종이 냄새 가득한 서점에서 책을 만나던 행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한때 우리는 집에 작은 서재를 갖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출판업계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듯 격변하고 있다.

종이책의 하향세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고, 종이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00부 남짓의 책을 자비출판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우편과 인편으로 나눠주는 현실에 마주할 때마다 출판인으로서 막막함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상업적인 어려움을 넘어, 책이 가진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듯한 씁쓸함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종이책의 가치와 미래를 굳게 믿는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에 익숙해졌지만,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종이의 질감, 인쇄된 글자를 따라가는 눈의 움직임,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디지털 콘텐츠가 결코 줄 수 없는 깊이와 여운을 선사한다. 밤늦도록 아이 머리맡에서 읽어주던 동화책의 온기, 지친 하루를 마치고 따뜻한 차와 함께 넘기던 소설책의 위로는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경험과 정서적 교감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믿음만으로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변화의 물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지역 출판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온라인 플랫폼과의 적극적인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지역 문화 콘텐츠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 인물, 설화 등을 기반으로 한 특색 있는 책을 기획하고, 지역 축제나 행사와 연계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는 교육적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디오북이나 전자책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종이책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독자들의 소비 패턴에 발맞춰 나가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모든 시도들이 결국 종이책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판업계가 저물녘 노을처럼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곳 광주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가며, 독자 여러분과 함께 종이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