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지역사회 함께 ‘살아 있는 이민정책’ 만들자 [‘글로벌 이주 허브’ 광주·전남 대전환 이루자]<10·完>에필로그 인구 유입 넘어 미래 비전으로 전환을 지역 맞춤 로드맵 수립·전담조직 필수 산업·교육·공동체 연계 이민모델 시급 캐나다 사례 ‘수용·균형’ 중요성 조명 지방정부 권한 강화·거버넌스 재구축 ‘포용·공존’의 사회통합 전략 모색해야 변은진 기자

2025년 10월 14일(화) 20:45

광주시와 전남도가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하면서 지역 미래 전략으로 ‘이민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강기정 광주시장이 지난해 5월 광산구 광주외국인주민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박병규 광산구청장 등 내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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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과 고령화, 청년 인구 수도권 유출로 광주·전남의 인구 기반은 빠르게 약해졌다. 광주는 자연 감소 국면이 고착화됐고 전남은 전체 인구의 4분의1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지난 9회에 걸친 기획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것은 지역의 인구 위기 실태만이 아니다. ‘이민’을 지역의 미래 전략으로 전환하고 재도약을 모색하는 지방의 결단이었다.

광주·전남은 이미 외국인 주민이 생활 속 전반에 이웃공동체로 자리잡았다. 광주는 10년 새 외국인 인구가 2배 이상 늘었고, 전남은 최근 5년 간 외국인 인구 증가율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외국인 주민은 산업 현장, 돌봄·복지, 농업 등 도시의 일상과 경제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특히 산업 현장의 수요는 절박하다. 농어촌·제조·돌봄·관광·에너지 등 곳곳에서 “외국인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민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문제 의식이 현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광주·전남은 ‘이민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 ‘글로벌 포용도시’ 비전을 선포하고 5개년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4-2028년)을 수립했다.

결혼이민자 중심의 다문화정책에서 체류 유형별 맞춤형 이민정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의료·교육·노동·주거 등 전 주기적 지원을 확대해 ‘함께 사는 도시’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전남도는 전국 최초의 광역 단위 ‘이민외국인 종합지원센터’를 개소하고 동서권 거점을 확충해 지역특화형·광역형 비자 활성화, 안심병원 지정, 콜센터·이동상담 등 생활밀착 지원을 넓히고 있다. ‘전남지사 추천’ 체계와 가족 동반 인센티브, 정책 모니터링단 등 정주율을 높이려는 장치도 시도 중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일률적 제도에서 벗어나 지방이 직접 설계하는 ‘광역형 비자’ 제도도 변화의 조짐이다.

지역이 산업 수요와 정주 여건에 맞춰 체류 요건을 제안하고 법무부가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광주는 AI·미래차, 전남은 조선·철강·관광·복지 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유학생과 전문인력을 연계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록 초기 단계지만 지방이 주체로 나선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숙련이민자 단계적 영주권 전환 절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지방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의 지침만 집행하는 소극적 행정으로는 지역 실정에 맞는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산업·대학·생활여건 데이터를 통합한 지역 주도형 이민 로드맵과 상설 전담조직, 안정적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민정책은 부처 간 협의가 아닌 지방의 생존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초점도 ‘유입’에서 ‘정주’로 옮겨가야 한다. 고용허가제 중심의 순환 체류 구조로는 인력난을 메울 수 있을 뿐,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할 수 없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숙련 이민자에게 단계적 영주권 전환 기회를 부여하고 가족이 함께 정착할 수 있는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

정책 실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거버넌스 재설계도 필요하다. 광역과 기초, 산업단지, 대학, 의료기관, 시민단체, 이민커뮤니티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야 한다.

1회성 행사나 지원 사업이 아닌 일상 속 포용 시스템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학교의 언어·적응 교육, 기업의 직무훈련, 시민사회의 상호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 연중 운영될 때 비로소 이민정책이 도시의 체질을 바꿀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광주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열린 한국어교실 겨울학기 졸업식 모습.

◇성공 안착 위해 시민 인식 전환 중요

선진 이민국가인 캐나다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연방-주정부 협업, 주정부 지명(PNP)·포인트제·스타트업 비자 등 다층 경로, 입국부터 정착까지 이어지는 언어·취업·커뮤니티 연계, 학교·도서관·시민단체가 엮인 ‘일상형 통합’은 참고할 만한 요소다.

동시에 급격한 수용은 주택난·의료난(응급실 대기) 등 인프라 압박을 키웠다. 숫자보다 ‘수용 역량’과 ‘균형’이 중요하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민을 미래 투자로 보되 지역별 분산 정착과 자격 인정 개선, 사회서비스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광주·전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 전용시설’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보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외국인 행복 드림타운, 안심병원, 통·번역 의료 서비스, 방과후 언어교육, 돌봄 지원 등이 정책의 필수 항목으로 포함돼야 한다.

이민정책은 시민의 인식으로 완성되는 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와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역사회 내 반발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상호 문화 축제, 마을 리빙랩, 학교·기업·공공기관이 함께하는 공존 캠페인 등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제도 인프라 재정비도 시급하다. 현재의 중앙 집중형 구조로는 지방이 종합적 이민정책을 설계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국가 차원의 ‘이민청’ 신설을 제안한다. 중앙정부는 기준과 안전망을, 지방정부는 설계와 집행을 담당하는 분권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과 평가도 단순한 인구 수가 아닌 정착률, 고용 유지율, 지역사회 참여율 등 정성적 지표를 함께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시스템이 구축돼야 광주·전남의 이민정책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방이 제도 설계의 주체가 되고 중앙이 지원하는 구조가 바로 지속가능한 이민정책의 핵심이다.

동강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하는 광주 외국인 유학생 서포터즈.

◇“위기를 기회로” 글로벌 이주 허브 도약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단순하다. 이민정책은 인구를 메우는 정책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광주는 AI·미래차 산업과 연계한 외국인 인재 정주 모델을, 전남은 조선·철강·관광·돌봄 산업과 결합한 숙련인력 가족 정착 모델을 구체화한다면 인구 감소의 위기는 새로운 성장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더 많은 출산’을 넘어 ‘다양한 이주’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민’은 국가를 넘어 지자체가 생존을 위해 감당해야 할 전략적 과제가 됐다. 외국인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시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과 사회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광주매일신문은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외국인 주민 증가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전환하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광주와 전남이 ‘글로벌 이주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지금 시작되는 논의와 실천의 깊이에 달려 있다.

필요한 것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행력이다. 전담조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예산을 중장기 계획으로 전환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행정이 설계하고, 시민이 공감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운영하는 ‘살아 있는 이민정책’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인구 절벽을 넘어서는 길, 이민이 해답이 될 수 있을지 시민과 함께 묻고 답할 때다./변은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