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유연한 물을 통해 배우는 생에 대한 태도 물(water) 깊은 물은 결국 바다에 이른다 이현남

2025년 11월 13일(목) 19:10

노현우 作 ‘NO.184_AM05:45 08° JUL 2019’ <작가 제공>

산드로 보티첼리 作 ‘비너스의 탄생’ <위키피디아 검색>

김미지 作 ‘여수 20241229’<작가 제공>

요즘 같은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는 자연 속 무한히 넓은 아량으로 우리에게 치유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는 물을 보며 마음을 정화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성을 넘어 생성형 AI를 통해 이제 직관까지 넘어온 시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일 테다. 지극히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에 무엇보다도 빠져들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물, 재생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요즘 물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자원이자 삶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형태를 갖지 않지만 모든 형태를 포용하는 물.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모든 것을 담아내는 존재이다.

또한 예술가들에게도 종종 사용되고 있는 물은 현실을 넘어서 감정, 철학, 시간을 묘사하는 언어였다.

일반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상징하는 물은 탄생, 생명의 근원, 정화와 치유, 흐름과 변화 등을 나타낸다.

-작품 속 물에 대한 상징들 생명의 근원, 시간의 초상, 치유

물과 관련된 그림으로 소개해 볼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 해안으로 오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 작품인 비너스 탄생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돼 있으며, 보티첼리가 강력한 후원자였던 메디치가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라고 하면 대다수가 그리스시대 조각작품으로 유명한 밀러의 비너스와 르네상스 시대 회화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를 떠올릴 정도로 이 작품의 명성은 세계적이다.

바다에서 태어나 육지로 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야말로 자연의 순환과 조화를 상징하고 있다.

그림 왼쪽에서 봄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산들바람의 신 아우라가 비너스에게 바람을 불어주고 있고 이 바람을 타고 비너스는 키프로스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른쪽에 선 봄의 여신은 꽃무늬가 수 놓인 화려한 망토로 비너스를 감싸주려고 큰 천을 펼쳐들고있다.

작품에서 물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순환의 매개체로 등장하는데, 바다 거품 속에서 탄생하는 비너스처럼 물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물은 생명과 존재의 시작, 모든 생성의 근원으로서 비너스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신(神)적 매개체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자연과 인간,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깊은 영혼의 세계를 의미하는 바다에서 인간의 세계인 해변으로 향하는 모습은 다시말해 비너스가 바다에서 나오는 것은, 정신의 영역에서 물질의 영역으로 이행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현우 작가에게 물은 작업의 중심에 놓인 중요한 요소이다.

형태를 가지지 않지만 모든 형태를 비추는 물은, 그림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간 의 흐름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림 속 물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를 넘어 작가에게 흐름과 머무름이라는 상반된 상태를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로서, 작가에게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물 위에 비친 풍경 속에는 고요한 시간의 흔적이 쌓여있다. 작가는 지나가는 시간과 함께 어 떻게 감정이 움직이고 사라지는지를 그리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실제 풍경을 화폭 속에 그대로 담아내는 작가는 작품 속 장소를 마주한 시간과 날짜를 제목에 기입한다.

‘NO.184_AM05:45 08° JUL 2019’ 작가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 속에 담은 장 소를 작품 속에 담기 전 감정이 듬뿍 차올랐던 시간과 장소를 기록해 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품 속에서 물은 ‘시간의 초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흐르고 변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물처럼 사람의 감정 또한 순간적이며 지속적이다. 마치 고요한 것처럼 보이는 물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진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진동은 인간의 감정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파동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 면의 감정과 마주할 수 있는 매개체가 돼주길 바란다.

김미지 작가의 작품 속에는 하늘에 뜬 둥근 달과 함께 여수 바다가 등장한다. ‘여수 20241229’ 작가 역시 그날 하루의 감정들과 삶의 조각들을 제목에 적힌 날짜와 함께 작품 속에 세겨 넣는다.

작가는 하늘에 뜬 달 속 세겨진 날카로운 흔적들에 하루의 감정을 담고 붉은 여명과 푸른 하늘이 맞닿는 순간, 시작되는 내면의 사유와 이를 통한 ‘치유의 시간’을 작가는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유연한 물처럼…
물은 언제나 자신이 담긴 그릇의 형태를 따르지만, 결코 본질을 잃지 않는다. 흘러야 할 땐 유연하게 흐르고, 막히면 고요히 머물며, 결국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간다.

보티첼리의 바다처럼, 물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고집하기보다 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지혜를 일깨운다. 변화와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 그것이 물이 가르치는 유연함이다.

삶이 우리를 흔들 때마다 우리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고, 멈춰도 썩지 않으며, 결국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그 길 위에서 유연함은 곧 생명의 지속이자 아름다움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복잡한 세상 속,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버거운 시점이 빈도수를 높인 채 덮쳐와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로서 멋진 삶일 것이다.

결국 포기하지 말고, 다시 흘러, 자신만의 바다에 닿는 것 그것이 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깊은 생의 태도인 것이다.

<이현남 문화비평·갤러리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