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더 단단해지는 성장 / 최강님

2025년 12월 09일(화) 18:37

최강님 지역아동센터광주지원단장

경계선 지능 아동(느린학습자)을 바라보는 시선은 흔히 ‘부족함’에 머물곤 한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고 또래 관계에서 서툰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쉽게 “뒤처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아동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느림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이 아동들은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번 이해하면 끈기와 성실함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간다. 단순 암기보다 반복과 체험을 통해 더 잘 배우고, 작은 성취에도 큰 기쁨을 느끼며 자신감을 쌓는다. 또래보다 관계 형성은 더딜 수 있으나 정서적 공감력이 깊어 친구와 교사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기도 한다. 빠르게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이런 꾸준함과 섬세함은 귀한 자질이다.

아동의 성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빛을 낸다. 파견전문가와 지역아동센터 종사자의 체계적 지원이 배움의 폭을 넓힌다면, 가정은 그 성장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가 될 것이다. 보호자가 특성을 이해하고 작은 성취에도 “잘했어, 네가 자랑스럽구나”라며 격려할 때 아이들은 눈빛이 달라진다. 한 아동은 오랜 시간 연습 끝에 자기 이름을 쓰자, 보호자의 따뜻한 포옹 속에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고 이후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보호자와 파견전문가가 발달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정에서의 관찰이 파견전문가에게 전달되고, 현장의 변화가 다시 보호자에게 전해질 때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작은 진전이라도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아동은 단순한 학습 능력 향상을 넘어 삶 전반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배운다.

여기에 지역사회의 역할이 더해질 때 아동들은 더 넓은 울타리 속에서 성장한다. 지역아동센터와 파견전문가, 보호자가 서로 협력하면 아동은 ‘혼자 버텨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자라는 아이’가 된다. 실제로 부모 교육과 맞춤형 정서 지원을 병행한 사례에서는 아동의 학습 능력 향상뿐 아니라, 가족 관계의 긍정적 변화도 확인됐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아동들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걸음을 존중하며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다. 조금 느린 길 위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보호자와 파견전문가, 지역사회가 그 길을 함께 걸어줄 때 아이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꽃을 피울 수 있다.

경계선 지능 아동(느린학습자)은 미래의 주체이다. 느린 속도는 한계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단단한 성장을 가능케 한다. 그들의 성장은 곧 우리 사회의 희망이며, 함께 만들어갈 더 따뜻한 내일의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