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귀향 / 수필 - 오희숙 |
| 2026년 08월 24일(월) 1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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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흙에서 농부의 순한 마음은 흘러나온다. 흙의 말씀에 순종하며 농부들은 살아간다. 잘 여문 콩을 수확할 때까지 콩밭은 푸른 예배당이 된다. 나는 그 예배당에서 새소리 찬송가를 들으며 아침부터 김매고 있다. 잘 가꿔진 콩밭은 초보 농부의 수고를 져버리진 않을 태세인지, 아련한 흙 내음으로 보답하는 듯하다.
어느 사이에 농부의 마음이 몸에 밴 것일까. 김을 매다가 곁가지라도 꺾어지면 남의 발을 밟은 것처럼 미안하고 아깝다. 세상사에 묻혔던 감성을 귀향 후의 콩밭에서 만난다. 호미가 스친 자리마다 물기를 품은 소담한 포기들이 꽃보다 예쁘다. 가지런한 고랑에 나비처럼 흩날리는 콩잎들은 응원의 박수를 치는 것만 같다.
햇살이 옆얼굴을 스칠 때와는 달리 뜨겁게 정수리에 머물면 점심시간이다. 솔 향기 그윽한 그늘에 자리를 펴고 고추, 상추, 치커리 등 텃밭에서 솎아온 쌈 거리로 점심을 차린다. 그늘 밥상에 차려진 초록 위로 군침을 흘리는 볕뉘가 비춘다. 달달하게 당도가 올라간 바람이 반찬 위로 올라앉는다. 저 바람 반찬을 먹으면 아삭아삭 소리가 날 것 같다.
콩밭 너머의 밭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아직도 밭일을 하고 있다. 밭에 엎드려 계속 일만 하는 동네 분들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지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아무개 어머니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호칭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귀농이랍시고 고향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당연한 머뭇거림인지 모른다. 나의 어릴 적 저분들은 모두 새댁들이 아니었던가. 그간의 세월이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어쩌다 나는 이곳에서 콩밭을 매고 있는가. 순간 어떤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풋풋했던 어린 시절은 나의 감정을 촉촉하게 하지만 귀향 전 복잡했던 출퇴근의 아픔은 찬물처럼 마음을 차갑게 한다.
나이가 지긋한 동네 사람들을 편하게 할머니라고 부르자고 마음먹는다.
“할머니! 할머니!”
몇 번을 불러도 꿈쩍도 안 한다. 이미 청각의 기능이 멈춰버린 늙은 새댁들, 그리고 나. 시간의 정적 속에 뛰어든 소리의 흔적들을 날리는 것일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휙 지나간다.
긴 시선으로 하늘을 본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서부터 들인지, 경계가 없다. 온통 초록 물 툭툭 튈 것 같은 들녘에 유유히 나는 백로가 한나절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 마냥 고즈넉한 순간이다. 백로는 내가 장문으로 써 내려간 김매기라는 편지를 읽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고개 숙여 한 글자 한 글자 호미로 적은 편지를 곁눈질했을 것이다. 백로는 내가 쓴 편지에서 오탈자를 찾아내며 날아올랐을 것이다. 문득 어떤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백로와 함께 이 콩밭에서 쓰고 있었구나 싶다. 귀향이 선물해 준 특별한 기쁨이다. 대충 펼쳐 놓고 먹은 반찬 그릇 사이로 작은 풀꽃 하나가 수줍게 피어 있다. 근사한 식탁에 꽂혀 있는 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저 풍경 속에는 자연과 일치되는 또 다른 희열이 숨어 있다.
삶의 행로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오만 가지 생각으로 쌓던 짐을 풀었다 다시 쌓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그것도 떠나왔던 고향에 다시 머리를 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지 않은 결정을 앞날의 걸음으로 증명하리라 다짐했던 그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본다.
유월의 뙤약볕, 그리고 여생의 묵정밭은 이젠 나에게는 함께 할 친구다. 콩알이 잘 여물 때까지 푸른 예배당 같은 콩밭에서 호미와 김매기로 기도드릴 것이다. 그렇게 백로와 함께 장문의 편지를 써 내려가며 고향의 붙박이별이 되어 묻히고 싶다.
하루 일을 마치고 긴 그림자 타박거리며 집으로 간다. 챙이 너른 모자 속으로 들어온 노을이 귀향을 잘했다며 나를 격려한다. 오늘처럼 만족할 내일이 또 있을 거라며 귀띔해 주듯 노을은 붉게 물들고 있다.
<오희숙 약력>
▲광주문인협회 수필분과 위원장
▲한실문예창작 회원, 향그런 문학회 회원
▲수상 : 치유문학상 동시 최우수상, 서울지하철 문학상, 산해정문학상, 신정문학상, 평택사랑 전국 백일장 수필부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