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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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산 자와 죽은 자의 義와 용기의 교감
화가 박종석의 히말라야 그림여행
<20> 2011, 마나슬루 휴먼 드라마!

  • 입력날짜 : 2014. 05.28. 19:19
박종석 作 ‘구름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화가가 되었지만 오지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희망사항이라 20대부터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그리고 30대 초부터 히말라야 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다고 전문 산악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또한 세계 최고 높은 산의 정복을 꿈꾸는 무모한 도전정신도 없었다. 그러나 길을 떠나 외로운 방랑자가 되어서 가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또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 생기 넘치는 무한한 상상력에 빠진다. 미세 감각으로 인류 문명의 흔적과 대자연을 통해 그 무엇인가의 전환을 꿈꾸는 창작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예리한 감성을 통해 몇몇 산악인을 만나 관찰하고 현장 기록화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산악인들이 세간에 두고 온 그리움을 잊고 히말라야 ‘풍요의 여신’으로 불리우는 안나푸르나(8091m)와 에베레스트, 칸첸중가 등 설산에 안겼다. 매년마다 젊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에 도전하다 흰 구름 같은 전설을 남겨 놓는다. 70억명에 육박해가는 인류의 현 상황으로 보면 한 개인의 죽음은 잠시 애도의 위로가 있을 뿐…. 슬그머니 사라진다.

사람의 생사 문제에 있어서 죽음의 필요조건은 생명이다. 죽음은 유물론적으로 보자면 유기적 물질이 비유기적 물질로의 전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이면(裏面)이 아니라 삶의 일면이라고도 한다. 고정관념으로 보면 세상이 아는 진리다. 그러나 한 걸음 사이에 생사의 경계가 나눠짐을 알면서 칼날 같은 공간을 마다않고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찮은 미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살고자 발버둥 친다. 그런데 산악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험한 길을 선택해 떠난다. 그리고 흔연히 운명에 맡긴다.

‘카일라스’
티베트 불교의 성자 밀레르파는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법의 절반을 이룬 것이다”라고 했다. 해탈한 자가 마침내 깨달은 진리를 법(法)으로 본다면 깨달은 산악인들은 구도를 향한 수행자와 같다. 단순하고 간결한 행보로 자기 혁명을 위한 고통의 극점에서도 자기를 바라보며 자신을 정복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7, 8천m 준령들이 5천여㎞나 뻗어 있는 히말라야의 신들의 정원에서는 겸손과 하심(下心)을 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친다. 베테랑급 산악인들도 히말라야 설산에서 살아감의 끝을 경험한다. 그들 가운데 깨달음을 실천한 수행자였다면 아마도 사후 영혼이 평온하리라 믿는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세상의 민중들 편에 섰던 의사출신 혁명가, 체게바라의 어록이다. 그의 다른 시 ‘승리’에서 에베레스트 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다 실패했지만 결국은 정복되고 말았음을! 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허공 경계의 에베레스트 정상은 인간에게 정복당한 것은 없다. 불편을 감수하고 오른 자가 스스로 내려온 것뿐이다. 그저 자기의 가치를 실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와 가치는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비범한 것이다.

나는 2001년 2번의 티베트 탐사 후 2003년 티베트 무인구(無人區), 곧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을 한 달 동안 7,000㎞를 탐험 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7년 한국도로공사 희망원정대에 동참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400m) 빙하 위에서 2개월 동안 생활하며 후배들이 정상에서 인생 공부 잘하고 하산하길 기원했던 경험과 2009년 몽벨리스트 원정대에 참여해 안나푸르나 내원에 있는 타르푸 출리(5,663m) 정상에 올라 장엄한 히말라야 산군들을 스케치하고 하산한 경험에 이어 2011년 4월에 자유를 향한 마나슬루 원정대와 6월에는 부산 다이네믹 희망 원정대에 동참해 낮 기온 50도가 육박한 사막과 빙하를 15일 동안 걸으며 명상에 잠겼던 경험들 가운데 생사의 갈림길을 목도하고 느낀바 이 순간 호흡하고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가족과 친구와 인연이 된 모든 분들과….

순백색의 히말라야 산군은 언제 보아도 웅대하고 아름답지만 품에 안길수록 더욱 경건함도 느끼게 한다. 산도 산 나름이겠지만 신품(神品)을 지닌 고고한 자태로 우뚝 서있는 마나슬루는 자만한 인간들에게는 마음을 낮추라고 무언의 경고를 주는 것 같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산행은 ‘자유를 향한 2011, 마나슬루원정대’를 지원하기 위한 베이스캠프 방문으로 2011년 4월 18일 출발, 5월5일까지 일정이었다. 위계룡 단장님과 함께 총 12명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지에서는 포터까지의 총인원은 40여명의 대식구였다.

이번 원정은 후발대로 출발하였지만 각별한 의미를 지닌 추모 트레킹 팀이라 할 수 있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를 신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히말라야 여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것도 통념이다. 201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8163m) 정상을 오르다가 실종된 윤치원(41세, 경남 진해), 박행수(28세, 전남 함평) 대원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원정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영롱한 별빛이 된 두 젊은 영혼들이 자유와 영원한 안식을 갖기 위한 산자들의 배려와 염려가 담긴 고난의 원정대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훈자 울타르피크가보이는풍경.
다행히 4월 말, 김미곤, 박남수, 이정현 대원들 외 다수 대원들이 3캠프를 설치 후 故 박행수 대원의 시신을 찾아 플라스틱 박스를 엮고 구멍을 뚫어 연결 후 운구를 옮겨 하산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뒤 헬기로 운송 하는데 시신이 헬기 내부에 들어가지 않아 조종석을 해체하고 운구를 조치한 후 카투만두 공항에 5월 4일, 11시 40여 분에 도착해서 앰블런스에 옮겨 실고 시내 티칭병원에 안치되는 과정을 후발대 방문단은 목도하였다.

위계룡 단장님과 박명환 대원의 하산으로 뒤 수습이 이루어졌으며 베이스캠프의 대원들은 윤치원 대원의 시신 찾기에 힘겨운 수습을 남겨두고 있었다. 고 박행수 대원이 남긴 유품인 안전벨트를 인수받아 만져 보았을 때, 1년 간 고산에서 머금은 얼음이 녹아 축축한 물이 손에 닿을 때는 귀향과 자유의 촉감을 느끼게 한다.

고 박대원의 평안한 안식을 위한 원정대원들의 피땀이 담긴 고난의 결정체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설산 위의 별빛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가슴 뭉클한 시간의 드라마였다. 그 전에 12명의 지원단을 만나기 위해 4월 26일 마나슬루 BC에서 사마가웅의 마나슬루 롯지로 하산한 박상수 대장, 검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결의에 찬 목소리의 리더쉽을 포옹하고 절해고도와 같은 산상의 수고로움을 모두들 무언의 미소로 화답했다. 먼 고산의 재회는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만난 것 보다 더한 감동을 주고받는다. 만남 이 후 원정대장의 목적을 간절히 기원한다. 8000m의 고산에서 젊은 대원들이 동료의 시신 수습 작업은 생명 담보로 한다. 그 과정은 언어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뜨거운 동료애라 할 수 있다.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용기 없는 자”라는 속담처럼 이번 마나슬루원정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의와 용기의 교감이었다.



악마산! 마나슬루의 감동의 한 페이지에서 느낀 산 자와 죽은 자의 인간애, 고인이 된 젊은 두 대원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아픔으로 남았지만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산 자의 고난이 수반되고 실천으로 옮겨졌다는 행위에서 여유로움이 묻어있는 극적 다큐 드라마였다. 또한 고귀한 뜻을 이어 그들의 평온한 안식을 위한 휴머니즘 정신은 이번 “자유를 향한 마나슬루 원정대”의 의미이자 산 사람들의 따뜻한 가치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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