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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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기상을 품다 세월의 연륜을 담다
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사랑방신문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

  • 입력날짜 : 2014. 07.22. 19:28
명옥헌은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574-1615)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광주매일신문 DB
어느새 여름의 한복판이다. 장마 끝 습한 기운은 끈적끈적하게 몸에 달라붙어 심신을 노곤하게 만든다. 원기회복이 시급하지만 작열하는 태양은 움직임을 방해한다. 이럴 때일수록 수족을 바삐 놀려야 한다. 하다못해 산책이라도 나서야 한다. 이럴 때 딱 좋은 장소. 바로 남도 풍류와 역사·문화의 산실인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정자들이다.
광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무등산 가는 길의 잣고개를 넘어 가사문학의 산실이자 호남정신의 한 줄기인 ‘담양의 정자’들을 둘러보러 떠나자.

무등산 자락을 지나 광주호를 끼고 막 평지에 내려서면 나타나는 남면 지실마을 별뫼(星山) 밑의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이 첫 번째 목적지다. ‘죽향’으로 알려진 담양엔 열 손가락만으론 부족할 만큼 정자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식영정은 듬직하게 자란 소나무와 그 사이로 펼쳐진 광주호의 맑은 물이 어울려 절경을 연출한다. 이곳을 송강의 정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16세기 민중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 선비 석천 임억령과 관계가 깊다. 학문과 학식이 깊었던 고결한 선비를 위해 그의 제자 서하당 김성원이 지어준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학식 높은 주인을 찾아 송순, 김윤제, 김인후, 기대승, 양산보, 백광훈, 김덕령 등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한다. 정철도 이곳을 지나면서 이 마루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자미탄에 눈길을 주었으리라.

다음은 소쇄원. 조선시대 별서 중 으뜸으로 치는 소쇄원은 담양의 정자 중에서도 제일의 아름다움으로 친다. 담양지역 정자로서는 드물게 넓은 주차장까지 갖춘 이곳은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소쇄옹 양산보가, 그의 스승 정암 조광조가 정치적 광풍에 휘말려 처참한 죽음을 보고는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름이 높다. 고경명, 김인후, 송순, 정철, 기대승, 백광홍 등 당대의 문사들이 드나들던 소쇄원은 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옛날의 풍류 한자락을 음미하려는 여행자들로 여전히 북적이는 장소가 되었다.

◀ 식영정 ◀ 소쇄원
담양의 남쪽 끝에 자리잡은 ‘독수정’은 그 성격이 여느 정자와 다르다. 광주호 주변의 많은 정자들이 16세기 호남 사림의 문화활동의 터전인데 반해 이곳은 은둔을 위해 지어졌다.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은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숨어살았다. 그것도 송도가 있는 북쪽을 향해…. 그는 태조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아침마다 조복을 입고 송도를 향해 곡하며 절했다고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속에 홀로 앉아 있는 독수정에 올라, 눈감고 달리는 눈 먼 일상을 때맞춰 달려온 바람에 잠시나마 날려보낸다.

광주호를 벗어나면서 저수지 바로 앞에 자리잡은 소산정과 죽림재와 만옹정을 잇따라 찾는다. 고서면 분향리 일대에 있는 이들 정자는 창녕조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나라에 대한 절의, 청렴결백함을 본받고 싶은 후손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맘먹고 나선 정자기행에 ‘명옥헌’이 빠질 수 없다.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로 들어서니 요즘 담양군에서 생태마을로 가꾸고 있어서 그런지 마을 분위기부터 마음에 쏙 든다. 작은 고개를 넘자 정말 색다른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기슭 약간 비탈진 곳에 작은 정자가 소나무와 배롱나무에 싸여 있고, 그 앞으로는 네모진 연못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또한 주위를 매끈한 배롱나무가 빙 둘러있고, 세월의 더께를 얻은 고목들이 늠름하게 서 있다. 정원 역시 아무런 담장도 없고 작은 언덕이 감싸고 있다. 여름날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만개한 배롱나무의 진분홍 꽃잔치에 나그네는 그만 혼을 놓을 듯 싶다.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려니 할 것 같다.

창평면에는 ‘연계정’이 자리하고 있다. 1567년에서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거의 매일같이 한문으로 기록한 ‘미암일기’로 유명한 미암 류희춘 선생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인데 효와 윤리적 인간본성 등을 강조했던 성리학의 정신을 남도의 유생들에게 가르쳤던 강학장소이기도 하다.

▶면앙정 ▶송강정 ▶연계정
좁은 시골길을 돌아 들어간 연계정은 아담하고 단아했다. 언덕 기슭에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정자가 들어앉아 있고 그 앞에는 제법 너른 연못이 있다. 그 연못 안 섬에는 작은 석조건물인 ‘모현관’이 지어져 있는데 그 소중한 미암일기가 보관된 곳이라 한다. 당쟁의 한 가운데에서도 바른 길이 어떤 것인지 강조하다 끝내 유배당한 뒤, 그래도 꺾이지 않고 그의 정신을 후학들에게 전했던 미암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고서면에 있는 ‘송강정’도 빼놓을 수 없다. 당쟁에 휘말려 관직에서 밀려난 송강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가사문학의 백미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한 뛰어난 가사와 단가들이 탄생했다. 울창한 소나무가 호위하는 돌계단을 차례로 오른다. 소나무가 사방을 지키는 언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가 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 마루가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걸로 보아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간 듯 싶다.

담양 정자기행은 봉산면에 자리한 ‘면앙정’에서 마무리한다. 16세기 호남 시가단의 으뜸인 면앙정 송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대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이 정자를 오르내리며 그 유명한 ‘면앙정가’를 지었으리라. 제법 거친 호흡을 다 한 후 다다른 정자는 역시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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