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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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류재준 박사의 책으로 세상읽기
나는 누구인가
(최진석 등저, 21세기북스)

  • 입력날짜 : 2015. 08.23. 18:55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 앞에서 선뜻 ‘나’를 규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굳이 설명하자면 신체적 특징으로는 키가 작고 못생겼다. 성격적으로 이기적이고 게으르다. 하지만, 이것이 표면적인 설명에 불과하기에 이것이 ‘나’라고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똑바로 알기 위해서는 내면에 감춰진 은밀한 욕망과 가식까지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된 삶 속에서 잊어버린 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인문학은 잊어버린 나와 잊고 살고 있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자유를 위해서 경계(境界)에 서라’란 글귀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계에 있는 사람은 항상 불안한 존재이다. 하지만 고도의 정신집중과 방향감각을 요구하기에 경계에 있는 사람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인문적 통찰을 하는 사람이나 기업가는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은 정신보다 물질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요즘의 세태에서 인문학적 성찰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7명 저자들이 집필한 책이다. 편의상 최진석 교수의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자신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수행자가 아닌 생산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와 이념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데 상당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이는 스스로 자신이 가치 기준을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의 이념을 가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자신은 항상 왜소한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그 이념을 얼마나 끝까지 잘 지키느냐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유연하듯이,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은 유연하다. 태풍 앞에서 모든 나무가 휘청거릴 때 움직이지 않는 나무는 바로 죽은 나무이다. 살아 있는 것은 활동하는 것이고, 활동한다는 것은 운동한다는 것이고, 운동한다는 것은 경계에 선다는 것이다. 경계에 서는 것은 항상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모호하게도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해 명료해지려는 순간 개념과 이론에 갇히게 된다. 때문에 모호함은 명료함의 이름으로 정리해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채워야 한다.

자신이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성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욕망의 실행자가 된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하려는 사람이다.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나를 표현함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침해하는 어떤 것에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나의 주체성, 나의 존재성, 나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는 거침없이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무한 사랑이다.

‘새장 속의 새’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돼 있다. 독수리와 같은 천적으로부터 죽음을 피할 수 있고, 때가 되면 주인이 먹이를 주고, 추위와 더위를 피해서 편안히 지낼 수 있다. 반면 자유가 없다. ‘새장 밖의 새’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다. 수많은 천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거센 폭우와 눈보라 속에서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 대신 자유가 있다. 우리에게도 스스로 얽매여 살기보다는 훨훨 날아다니는 주체적 삶이 필요하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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