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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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천 맑은 물에 마음 씻고 싱그러운 산바람에 눈 헹구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지리산 옛길-서산대사길(신흥-의신)

  • 입력날짜 : 2015. 09.03. 19:36
다양한 종류의 나무·풀·곤충·바위·미생물이 함께하는 화개천 숲 공동체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 진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다가 화개동천 지리산 골짜기로 빠져드니 십리벚꽃길이 길안내를 자처한다. 화개천은 신흥마을에서 화개천 본류와 목통골이 합류한다. 목통골을 따라 올라가면 목통마을을 만나게 되고, 목통골에서 산비탈을 따라 오르면 칠불사에 닿는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다가 화개동천 지리산 골짜기로 빠져드니 십리벚꽃길이 길안내를 자처한다. 화개천은 신흥마을에서 화개천 본류와 목통골이 합류한다. 목통골을 따라 올라가면 목통마을을 만나게 되고, 목통골에서 산비탈을 따라 오르면 칠불사에 닿는다.

화개천과 목통골이 만나는 신흥마을에는 화개초교 왕성분교장이 있다. 왕성분교장 아래 계곡에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새겼다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최치원은 세속의 비루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신선이 돼 지리산에 입산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리산 옛길에 들어서기에 앞서 화개천 위에 놓인 신흥교에 선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아련하게 바라보이고, 그 아래로 여러 골짜기의 물줄기를 모아 흘러드는 화개천이 대동맥처럼 뻗어 있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화개천 주변에는 사찰이 많아 예로부터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다.

지금까지도 큰 사찰로 남아 있는 쌍계사와 칠불사뿐만 아니라 신흥마을 왕성분교장 자리에 신흥사가 있었고, 의신마을에도 의신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임진왜란 때의 승장인 서산대사는 1540년 의신마을의 원통암으로 출가해 휴정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서산대사는 의신사에 머무는 동안 의신사와 신흥사를 오가면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화개에서 신흥마을과 의신마을을 연결하는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지금의 도로 건너편으로 통행을 했었는데, 바로 그 길이 서산대사가 다녔던 지리산 옛길이다.

지리산 옛길-서산대사길은 신흥마을 길목산장과 신흥교 사이 왼쪽 벼랑에서 시작된다. 신흥-의신옛길이라 쓰인 산문을 통과하니 집채만큼 큰 바위가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마냥 육중하게 서 있다. 서산대사길은 계곡 위 산자락 숲속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주로 다니던 길이다.

지리산옛길-서산대사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지리산 반달곰 생태학습장 베어빌리지.
숲길을 걷다보면 화개천의 맑은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화음을 맞춘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짙은 녹음을 이루며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밝다. 화개천 건너로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가 보이고, 그 안쪽으로 선유동계곡이 숨어 있다.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선유동계곡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골짜기다. 길은 물이 흘러가듯이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숲속의 길은 사람만이 아니라 야생동물도 다니고 바람도 지나간다.

사람들이 걷기에 포근한 길이지만 서산대사길에는 숱한 애환이 서려있다. 옛날 화개장의 봇짐장수가 의신마을을 지나 벽소령을 넘어가며 흘렸던 땀방울이 스며있고, 숯을 구워 화개장으로 팔러가던 아버지의 팍팍했던 삶도 담겨있다. 한국전쟁 전후에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들의 비장함도 숨어있다. 의신마을 사람들이 화개를 거쳐 외부로 나가거나 의신마을의 초등학생들이 신흥마을에 있는 왕성초등학교에 등·하교 할 때도 걸었던 옛길이기도 하다.

딱 한 사람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일부러 다듬어 놓은 듯한 의자바위에 눈길이 쏠린다. 이 의자바위에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가려 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자 이를 본 왜병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길은 계곡에 바짝 붙었다가 높지 않은 산비탈로 오르기를 반복한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계류는 억겁의 세월 동안 깔끔하게 다듬어진 바위들과 행복한 조화를 이룬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혼탁해진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정화되는 것 같다.

농가 한 채도 만난다. 예전 이곳에는 주막이 있었는데, 이 주막은 이 길을 오가는 주민들과 소금장수 등 길손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민가 옆에는 묵어버린 밭이며 밭가에 쌓아놓은 돌담도 있다. 길을 걷다가 마음이 내키면 물가에 앉아 한가로움을 즐기기도 한다. 계곡가 그늘에 앉아 있으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금방 씻겨가 버리고 간장까지도 서늘해진다. 길가 바위 아래에는 한봉 벌통도 놓여 있고, 과거 숯을 구웠던 숯가마터도 발견된다.

화개천 건너편으로 단천골과 남부능선도 바라보인다. 숲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공존하고, 나무와 풀·곤충·바위·미생물이 함께한다. 숲 공동체는 바람과 푸른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면서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준다. 내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숲의 일원이 되니 내 마음도 푸근해진다.

어느새 의신마을이 건너다보인다. 의신마을은 더 이상 소박하고 가난해 보였던 산골마을이 아니라 도시근교의 전원마을 같은 이미지다. 멋진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도 깊고 깊은 산속의 작은 분지를 이룬 의신마을은 세상의 복잡한 풍파를 벗어난 별천지처럼 느껴진다.

의신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란을 피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의신마을은 전란에 휩싸일 때마다 그 소용돌이에 말려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의신마을 사람들 중에는 심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없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의신마을의 터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의신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4.2㎞에 이르는 지리산옛길-서산대사길이 끝나는 지점에 지리산 반달곰생태학습장 베어빌리지가 있다. 반달가슴곰생태학습장은 건물동과 방사장, 사육실, 교육실 등으로 이뤄져 있고, 지리산 반달가슴곰 2마리도 볼 수 있다.

의신마을 위쪽 골짜기를 빗점골이라 하는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9월 18일 빗점골에서 총탄에 맞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길에는 한국전쟁 무렵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개설한 옛 작전도로가 나 있다.

의신마을은 덕평봉과 벽소령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출발점이고, 대성동을 거쳐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초입이다. 베어빌리지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의신마을이다. 우리는 베어빌리지 앞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에서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도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물가 너럭바위에 누워 망중한을 즐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천국이 따로 없네.”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킨다.


여행쪽지

지리산 옛길-서산대사길은 화개천변 숲길을 따라가는 길로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4.2㎞에 이른다. 천천히 걷더라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거리가 짧기 때문에 대성동까지 1.5㎞를 연장해서 걷기도 한다. 의신마을에서 대성동까지는 왕복 3㎞로 1시간 10분 정도 추가된다.
-의신마을에는 식당이 없다.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쌍계사 입구와 화개장터에 식당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쌍계사 입구 단야식당(055-883-1667)이 유명하다. 더덕산채정식 1만5천원, 비빔밥 7천원, 사찰국수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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