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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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정신과 계백 충혼의 길을 걷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논산 솔바람길 (돈암서원-휴정서원)

  • 입력날짜 : 2015. 09.17. 18:36
백제의 계백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나당 연합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던 황산벌.
호남고속도로 논산IC를 벗어나자 얕고 완만한 산줄기에 감싸인 넓지 않은 농경지와 산에 기댄 마을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낮은 산과 평야지대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가야곡면과 연산면·부적면에는 선비문화를 간직한 서원과 사당이 많다. 이 지역은 계백장군이 이끄는 백제군이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황산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산의 선비문화와 계백장군의 혼을 맛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논산 솔바람길이다. 오늘은 아내와 둘이서 ‘계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솔바람길’을 걷기위해 돈암서원으로 향한다.

1634년에 창건된 돈암서원. 대표적인 유학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1번 국도변에 자리한 돈암서원 입구에는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한옥마을 앞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돈암서원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돈암서원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산앙루를 통과해야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을 하고 있는 산앙루에 오르면 돈암서원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앞으로는 멀리 돈암서원의 안산격인 천호산이 다가온다.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년)에 창건됐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창건하였다.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입덕문을 들어서니 정면에 강학공간인 양성당과 서재인 정의재, 동재인 거경재가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고, 양성당 앞에 돈암서원 원정비가 서 있다. 서원의 중심공간인 강당은 정면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인데, 돈암서원의 응도당은 정면이 아닌 전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돼 있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응도당(보물 제1569호)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설치된 사원 강당으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일뿐더러 옛 건축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강당건축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강당인 응도당.
장판각 옆 양성당 뒤편의 내삼문을 통과하면 높은 기단 위에 숭례사(崇禮祠)가 자리하고 있다. 숭례사에는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등 네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처럼 돈암서원은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뒤편에 있고, 유생을 가르치는 강학공간이 앞쪽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서원이나 사당과는 달리 돈암서원은 규모가 클뿐더러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돈암서원 왼쪽 담벼락을 따라 본격적으로 솔바람길을 걷기 시작한다. 차츰 소나무 일색의 숲이 이어지고, 가끔 조망이 트일 때는 연산면 일대와 대전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와 호남선 철로를 달리는 기차도 볼 수가 있다. 길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고 포근하다.

연산면과 부적면을 가르며 이어지는 능선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내려서면 충곡서원에 닿는다. 빛바랜 충곡서원 현판이 붙은 외삼문을 통과하니 일직선으로 내삼문과 사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사당 옆에서는 배롱나무가 화려함을 뽐내고, 뒤편에서는 참나무들이 사우를 호위한다. 내삼문 왼쪽에는 성삼문 유허비가 서 있다.

계백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충장사.
충곡서원은 백제 장군인 계백과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초기 7분을 모셨던 충곡서원은 11분이 추가돼 현재 계백장군을 비롯하여 17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 능선삼거리로 올라간다. 조망이 트이는 팔각정에 올라가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부드러운 산줄기들이 백제의 숨결같이 온화하고, 낮은 산줄기에 감싸인 탑정호가 잔잔하게 다가온다.

적송 숲이 점점 울창해지면서 우리의 발길은 계백장군유적지에 닿는다. 계백장군유적지는 너른 잔디광장을 가운데 두고 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장군묘, 충장사, 충혼공원, 자연학습공원구역으로 나누어져있다.

우리는 먼저 계백장군묘로 향한다. 계백장군묘로 가는 길은 적송 숲을 따라 이어진다.

계백은 백제 마지막 장군으로서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5천 군사를 이끌고 논산 황산벌에서 5만여 명의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백제 유민들은 장렬하게 전사한 계백장군의 시신을 은밀하게 수습해 가매장했다. 근래에 이르러 본격적인 고증작업을 거쳐 계백장군 묘역을 단장하기에 이르렀다.

계백장군묘역 아래쪽에 계백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충장사가 있다. 충장사는 출입구와 사당에 이르는 길이 각각 세 개의 문과 길로 돼 있는데, 이는 삼문삼도(三門三道)라 해 궁궐이나 종묘·사원 등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충장사를 참배하고 나와 백제군사박물관으로 향한다. 2005년 개관한 백제군사박물관은 계백장군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역사·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백제의 군사활동 기록이 전시돼 있다. 백제군의 행렬모형을 만들어놓아 그 당시의 의장·복식과 무기 등도 관람한다.

박물관 뒤편 능선에 올라 계백장군과 5천결사대가 결사항전을 펼쳤던 황산벌을 바라본다. 천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저 높지 않은 산과 들판을 오가며 전투를 벌였을 현장에서 백제의 한이 전해지는 듯하다.

신풍리로 내려가는 길에는 시누대가 뒤덮여있다. 시누대숲을 지나니 신풍리 민가가 나오고, 탑정호가 지척이다. 신풍리 마을은 탑정호를 발아래에 두고 조용하게 자리를 잡았다. 신풍리 마을가에 있는 휴정서원으로 들어선다. 휴정서원은 1700년(숙종 26년)에 창건하고 1725년(숙종 31년)에 준공하여 유무 선생을 주향으로 봉안했다. 이후 송익필 등 7분을 추가하여 8분을 봉안했다.

본격적인 고증작업을 통해 새로 단장한 계백장군묘.
휴정서원에서 탑정호수로 내려서니 부드러운 산과 드넓은 호수가 잔잔하고 평화롭다.

1944년 완공된 탑정호는 논산시 부적면과 가야곡면에 걸쳐있다. 논산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보는 탑정호의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주변에는 탑정호수변생태공원도 조성돼 있다. 우리는 논산의 대표적인 명소인 관촉사로 향한다. 벌써부터 은진미륵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여행 쪽지

▶논산 솔바람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사원인 돈암서원과 충곡서원·휴정서원, 계백장군의 혼이 서린 계백장군유적지를 둘러보는 걷는 길이다.
▶논산 솔바람길은 돈암서원-충곡서원-계백유적지-휴정서원까지 6.2㎞ 거리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양촌IC → (697번 지방도로) → 반곡초등학교 → 연산사거리 →
(1번 국도를 따라 논산 방향으로 6㎞) → 돈암서원
▶논산 솔바람길이 끝나는 휴정서원 근처에는 매운탕집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에서도 탑정호반에 위치한 신풍매운탕(041-732-7754)은 음식 맛이 좋고, 탑정호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붕어찜(1인분 1만4천원), 매운탕, 참게탕을 전문으로 한다.


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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