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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금) 11:54-고금도에 가극안치(加棘安置)되다 초시와 복시를 면제받고 바로 전시(殿試)의 특혜로 과거에 급제한 이도재의 앞길은 전도양양했다. 과거 합격 이듬해인 1882년(고종 19) 종6품 홍문관 수찬을 제수받고 다음 해(고종 20) 정3품 승정원 동부승지, 1884년(고종 21) 이조참의, 1885년(고종 22) 성균관 대사성에 오른다. 과…2026-10-14 19:18
-창평 유천리에서 태어나다 호남은 임진의병에 이어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였다. 전라도는 1908년 일본군과 전투 횟수의 25%와 참여 의병 수의 24.7%를, 1909년에는 전투 횟수의 47.2%와 참여 의병 수의 60%를 차지했다. 따라서 전라도는 어디도 의병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일제가 전라도 의병을 진…2026-10-07 19:02
-영학숙에서의 인연, 인맥이 되다 한말 호남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사립 월평보통학교 설립, 신간회 장성지회장, 전남 건준 부위원장을 지내며 호남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독립운동가가 있다. 만석꾼의 장남이라는 안락한 삶 대신 가시밭길 같은 항일 투쟁의 길을 선택한 장성 월평 출신의 김시중이…2026-09-30 18:15
-호남 유림 종장(宗匠)이 되다 한말 전라도는 최대 의병 항쟁지였다. 1909년의 경우, 전투의 47.2%가 전라도 땅에서 벌어졌고, 참여 의병의 60.0%가 전라도인이었다. 전라도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분은 장성 출신 송사 기우만이다. 노사 기정진의 손자로 남도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였지만, ‘의병장’의 이미지가 …2026-09-16 19:28
-황룡촌에서 중앙군을 격파하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전적지 중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정읍 황토현, 장성 황룡촌, 공주 우금치, 장흥 석대들이다. 이중 중앙군과 맞서 승리한 유일한 전투 현장이 장성 황룡촌이다. 1894년 3월,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은 손화중·김개남 등과 함께 무장에서 봉기한 후 백산으…2026-09-09 18:24
- 어산접주가 되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투 현장이 장흥 석대들이었고, 석대들을 가득 메운 3만여 농민군 총대장은 남도장군, 장태장군이라 불린 이방언(李芳彦, 1838-1895)이었다. 남도장군이라 불린 이방언은 1838년(헌종 4), 장흥군 남상면(현 용산면) 묵촌에서 출생한다. 동학 입도 전 본명은 정석…2026-09-02 17:25
한말 위정척사파의 상징 인물은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3-1907)이다. 최익현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체결 당시 도끼를 짊어지고 ‘개항오불갗(開港五不可)를 담은 ‘병자척화소’(丙子斥和疏)를 올려 일본과의 조약을 반대했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태인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분이다. 면암 최…2026-08-26 18:40
- 궁벽한 진도에서 태어나다 19세기 예원의 총수는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였지만,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를 그린 문인화가로도 유명하다. 추사는 칭찬에 박절한 인물이었다. 특히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에 대한 폄의(貶義)는 잘 알려져 있다…2026-08-19 18:34
- 조선 성리학 6대가로 칭송받다 철학자이자 고려대 초대 총장을 역임한 현상윤(1893-1950)은 ‘조선유학사’에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화담 서경덕과 그 뒤를 이은 녹문 임성주,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을 조선 성리학 6대가로 꼽았다. 그러면서 서세동점의 위기를 맞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무렵에 성리학을 마무리한…2026-08-12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