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을 옥토로…절망 속 희망 일구다

[고려인 후손의 정착과제-선조들의 삶에서 배운다](4)고려인, 중앙아시아 벼농사의 원동력
집단농장 콜호즈…농업 생산 주요 축으로
농업 영웅 ‘김만삼’…고려인에 큰 자긍심

안재영 기자
2023년 10월 19일(목) 20:37
크즐오르다는 1937년 강제이주 초기 고려인 사회의 경제와 교육,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시 고려인들은 모진 핍박을 견뎌가며 버려진 황무지를 일궈 논밭을 만들었고, 이곳에 벼를 심어 벼농사 중심 지역으로 성장시켰다. 이는 오늘의 중앙아시아를 풍요롭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 중심에는 지금까지도 ‘벼농사꾼들의 어버이’라 불리는 김만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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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중심지…고려인 콜호즈

1937년 강제이주 당시 고려인들은 황무지를 일궈 논밭을 만들고 소중히 간직한 종자로 농사를 지었다.

황무지로 버려졌던 수백만평이 농토로 변했고, 한 알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고려인들은 고난의 삶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농사 초기 1㏊당 8t의 쌀이 생산되던 곳이 시간이 흐르면서 1㏊당 15t 이상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당시 1㏊당 약 3-4t을 생산하던 것과 비교하면 기록적인 성과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꾼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농업 생산의 주요 축이 됐다.

고려인들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농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당시 소련 정부는 크질오르다 등에 콜호즈라는 집단농장을 만들어 고려인들이 농사짓게 했다.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벼 생산량의 증대뿐만 아니라 이른바 모래사막 지대에서 수로 건설 등 농업 기반 환경의 개선을 통해 자연환경의 장애를 극복하고 벼농사를 가능토록 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은 척박한 땅을 옥토로 개간하며 집단농장 ‘콜호즈’를 조성했다. 그 중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집단농장으로 크질오르다 벼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아방가르드 콜호즈에서 수확된 쌀을 내리고 있는 인근 정미소.

이곳은 크질오르다가 소련 전체에서 벼농사의 중심지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크질오르다시의 남쪽 140㎞에 위치한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지금도 벼농사의 중심지로 연평균 7천t가량의 벼 수확량을 기록하며 크질오르다 벼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인 3세 빅토르 최(57)씨는 “고려인들이 버려진 땅을 논으로 만들어 많은 쌀을 수확하는 것을 보고 ‘농사를 참 잘했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며 “불모지였던 이곳을 풍요로운 땅으로 만든 선조들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김만삼, 불모지를 황금들녘으로

고려인들은 강제이주 당시 제대로 된 농기구 하나 없이 불모지였던 크질오르다 지역을 모진 핍박을 견뎌가며 벼농사 중심 지역으로 성장시켰다.

고려인은 여타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 영웅을 배출했고, 그 중심에는 크질오르다 시민들에게 ‘영웅(hero)’이라 불리는 김만삼이 있었다.
소련 당국은 김만삼을 비롯, 농업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노동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사진은 김만삼 문화회관에서 기념하고 있는 노동 영웅들의 초상화.

김만삼은 1937년 강제이주 된 뒤 선봉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벼 재배 실험을 통해 우수한 종자를 개발했고, 영농기술을 개선해 벼 수확량 증진 방법을 찾아내 농사에 활용했다.

그는 눈부신 벼 재배 성공신화를 이끌며 1941년 명예훈장, 1945년과 1946년 적기노동훈장, 1947년 국가공로상을 수상했다. 1949년에는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다.

또 그의 제자로 스탈린상 수상자이면서 노력 영웅인 이브라이 자하예프가 김만삼의 기술을 이어갔다.
김만삼의 제자 이브라이 자하예프는 벼 재배 등 농사 기술을 전수받아 농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력 영웅’ 칭호를 받았다. 사진은 이브라이 자하예프 기념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벼 종자들.

김만삼의 선진 농업 기술은 이후 카자흐스탄 농학아카데미나 소련 국민경제달성박람회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이룬 업적은 갖은 차별을 받던 고려인들에게는 크나큰 자긍심을 심어줬고, 식량 사정이 좋지 않던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지금도 공적을 기리는 노래를 비롯해 흉상, 거리, 회관 등이 크질오르다 곳곳에 남아 있다.

알렉산드라 김(45)씨는 “김만삼은 우리에게 지금도 ‘벼농사꾼들의 어버이’라 불리는 히어로(영웅) 같은 존재”라며 “당시 강제이주로 절망에 빠져있던 고려인들에게 떠오른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앙아시아에 벼농사 시대를 활짝 연 선구자다. 그의 노고에 힘입어 쌀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양식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만삼을 비롯한 노동 영웅들의 업적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김만삼 문화회관 인근에 세워져 있다.

/안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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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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