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동생들 기억 흐릿…통일되면 北 가족에 제 소식 닿길” [6·25전쟁 74주년](중)실향민 조병준씨 경기도 개풍군 출생…1952년 ‘자원 입대’ 국가유공자 정전협정 체결 70년째…“고향 땅 한번 밟아보고 싶어” 주성학 기자

2024년 06월 30일(일) 20:40

<이전 기사 - 광주·전남 이산가족 940명…5년간 373명 세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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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누나와 동생들 얼굴이 기억 안 나는데 북쪽 가족도 그렇겠지요. 그저 소식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거주하는 이산가족 조병준(91·사진)씨는 올해가 6·25전쟁 74주년임을 상기하며 30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만지면서 이같이 말했다.

전직 군인이었던 그는 1952년 11월20일 20살의 나이로 한국전쟁 중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조씨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개풍군 서면 개성리로, 북한 출신인 그가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의 입대 배경은 좀 더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조씨는 위로 조금례씨와 아래로 여동생 조금자·조명자씨, 남동생 조병권·조병수씨 등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탄동리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정미소를 운영했다. 당시 18살이었던 그는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의용군을 모집하기 위한 마을 이장의 소집령에 개성 시내의 선죽학교로 이동했다.

이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군인으로 보낸다는 소식을 들은 누나가 조씨를 외가로 피신시켰지만 전쟁 통에 낯선 이를 수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의 신고로 그는 개성형무소에 끌려갔다.

조씨는 “조사관이 ‘왜 여기 근처에 있었냐?’고 추궁했다. ‘먹을 것이 없어 들어갔다’고 하자 죄가 없고 나이도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며 “그때 조사관이 ‘의용군이나 도피자 같은 반동분자가 있으면 신고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수십년 전 그때를 회상했다.

이후 몇 달 뒤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후 개성으로 입성했고 당시 유엔군은 조씨를 의용군에서 탈출한 군인으로 보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냈다.

갑자기 고향을 떠나게 된 조씨는 수차례의 조사 후 혐의가 없어 풀려났지만 졸지에 고아가 됐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전주에서 자원입대해 논산훈련소와 하사관학교를 거쳐 제9사단에 하사로 임관했다.

‘백마부대’로 불리는 제9사단은 1952년 당시 강원도 철원군에서 백마고지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곳에 분대장으로 투입된 조씨는 매일 포화 속에서 분대원들과 생존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53년 7월 6·25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됐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조씨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군사 분계선이 그어져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으로 갈 수 없게 됐다.

이후 살기 위해 군 생활을 계속하던 그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2남1녀를 키우며 1978년 9월 육군 상사로 전역했다.

시간이 지나 1983년 남북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조씨는 방송에 명찰을 달고 참석했지만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이후 수차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선택되지 못해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조씨는 2007년 개성 관광 당시 북한 땅을 밟은 것을 마지막으로 당시 찍은 사진을 통해 지금까지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조씨는 “어렸을 적 누나가 도끼로 산에서 나무를 캐오다 실수로 발등을 찍어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 흉터가 기억난다”며 “지금은 가족들 얼굴을 잊어버렸다. 살아 있을지 궁금하다”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이어 “내 기억이 이리 가물가물한데 북녘의 가족들은 어떻겠나.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 얼굴을 보고 고향 땅도 밟고 싶다. 하다못해 찍었던 영상과 책을 가족의 후손에게라도 전해주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