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제법 눈이 쌓여 있는데도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아침 걷기를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산티아고 길을 뚜벅뚜벅 걷는 순례자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는 광주 소식에 반갑다. 이참에 확실히 해갈이 되면 좋겠다. 해서, 주말에 광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눈 소식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엊그제 한산리 이장님이 백일홍 나무 열여섯 그루를 학교에 기부했다. 하여, 학교운영위원들과 한산리에 사는 우리학교 1회 동문들이 함께 나무를 심었다. 학생회 아이들이 때마침 영어시간에 세계 음식문화 알기 프로그램 중 한국의 음식문화로 동지죽을 쑤었다며 새참으로 내왔다. 겉모습은 흡사 모내기 철에 새참을 준비한 아낙들과 반기는 일꾼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할아버지뻘 되는 동문과 손자 같은 재학생들의 만남이다.

모두들 겨울철에 나무를 심어도 될지 염려가 컸다. 그날 나무가 종일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해가 짱짱히 떠 주었다. 걱정이 조금 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쇳불도 단김에 빼랬다고 2023년도 ‘야외 학습장이자 쉼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장소에 우거진 잡목을 치우고 터도 닦았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이 번듯한 곳으로 변신했다. 아이들 스스로 목공시간에 자신들의 쉼터를 만들어 갈 공간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갑작스런 겨울철 나무심기는 뜻밖의 회의에서 시작됐다. 점암면 사무소가 주최한 기관장 회의에서 점암면 인구 유치 및 발전 방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5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진 학교를 면민과 학생, 교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평생학습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며 나무 기부를 부탁했다.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한산리 이장님이 벌교에 있는 백일홍 나무 열 여섯 그루를 기부하겠다고 했다. 이곳 면민 대부분은 우리학교 동문이다. 한산리 이장님 역시 우리학교 1회 동문으로 나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우리학교 동문회의 모교 사랑은 특별하다. 면 단위 중학교에 전국 단위 동문회가 있다는 사실에 필자도 처음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느 날 행정실장이 온라인상의 동문회 활동 영상을 알려주어 접속해 보았다. 탑재된 영상은 코로나19 전 상황으로 서울에서 열린 총동문회 정기총회였다. 갈수록 작아지는 모교에 대한 걱정에서 장학금 지원 상황까지 매우 적극적이었다. 마지막에 교기를 들고 교가를 제창을 하는 모습에서 동문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끈끈한 정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면단위 중학교는 동문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에 구성되기도 힘들다. 또 만들어졌더라도 명맥이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학교 동문회는 코로나19로 동문회가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더구나 지난 11월에는 동문들이 읍이나 타 지역으로 진학하겠다는 초등학생 부모들을 면담하여 신입생 모집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이 많은 우리학교의 특성을 살펴 2023년도에는 색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전교생에게 부모님 국가 방문 겸 해외에서 기후환경에 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발전기금을 조성한다는 게 그것이다. 후배와 학교를 사랑하는 동문들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현임교장으로서 가슴 뿌듯해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 도시에서 농산어촌의 작은학교로 진학하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다. 국가와 지자체가 주거와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학교는 도시 학교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별한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을 튼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작은학교일지라도가 아니라 작은학교이기 때문에 올 수 있다. 고흥점암중앙중학교 동문회의 학교와 후배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실천에 숙연해진다. 그 사랑과 실천이 작은 학교만의 특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초석임을 안다. 그리고 거기에 함께 나서 작은 학교 활성화에 나설 것임을 눈 풍경을 보며 가만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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