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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14:31친정 부엌 한쪽 구석에 냄비가 놓여 있다. 언제부터 저 자리에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세월에 닳아 때깔도 없고, 손잡이도 헐거워졌다. 바닥에는 오래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한때는 반짝반짝 빛났을 냄비가 이제는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두 손을 놓고 한가롭게 쉬고 있다. 저 냄비를 보고 있으면…2026-10-05 19:43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불태우듯 작열할 때도 그리움을 가슴 깊이 새기며 고요히 서 있는 배롱나무꽃 보고픈 마음 가득 차오를 때 진분홍 꽃으로 피어났다가 그리움이 사무칠 때는 붉은색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는 변치 않는 사랑이다 묵묵히 서서 100일을 기다리며 햅쌀이 나올 때까지 태양을 붙잡는다…2026-10-05 19:43
마음속에 태산보다 듬직한 산이 있다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높은 산이다 큰 나무가 울창한 숲은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쉼터였고 바람의 분탕질을 막아주는 방풍림이었다 내가 살아가고 쉴 수 있는 삶터요 쉼터였다 한없이 높아 보이던 산은 자식 수와 몸집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점점 낮아졌다 나무들은 베…2026-10-05 19:43
여자의 몸은 곡선이다 부드러움이다 둥그렇게 흘러내리는 여자의 몸 곡선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큰 산봉우리다 항아리는 곡선이다, 아이를 품은 여인 햇살과 짓궂은 바람을 둥글게 끌어안는다 아이들의 칭얼대는 옹알이가 달의 전설이 되는 여자의 둥그런 몸. 강물은 휘돌아 흘러가고 할머니의 몸은 직선이다 곡…2026-10-05 19:43
달군 정오의 낯깔 가마솥 뚜껑 덜컹 덜컹 숨들이 턱걸이하고 한낮의 그림자 쏴아, 떼창 파열음 내며 별밭 여문다 그 추임새 따가운 눈물까지 후줄근 등줄에 툭툭 털어내면 한나절이 노을에 걸린다 얼룩진 땟자국 어스름 더듬어 달빛 섞으며 몸 눕혀도 시간 그대로 익어가고 있다 ▲부산문학 시부문…2026-09-21 19:37
입으로 돈을 통째로 씹던 여자 어느 날부터인가 입 주위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어 새 식구를 들였을 땐 통뼈가 자랐지 사람들은 그녀가 돈통에 자물쇠를 채우듯 입을 닫았다지만 근육 속에서 자라나는 그녀의 푸른 실핏줄을 나는 보았어 시퍼런 칼날처럼 차가운 빛 입속에는 혀를 굴릴 침방울마저 작…2026-09-21 19:37
찬란한 꿈이 어린 새벽하늘에 어둠 걷힌 여명이 얼굴을 적신다 은혜를 사모하는 눈 속 깊은 망울에 내일의 푯대 향한 절절切切한 기도는 응답으로 새겨진 짙푸른 희망 안고 걷는다 새벽의 길을... ▲‘아시아 서석문학’ 시 등단 ▲아시아 서석문학 부회장 ▲광주시협 이사, 광주 문인협회 회원 ▲아…2026-09-21 19:37
올여름의 폭염과 폭우, 특히 네팔의 대홍수는 대자연의 위엄함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라 서서히 가을걷이(harvest)를 준비할 시기이다. 그런데 이즈음 생활 패턴이 안정적이질 않고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과거의 한 시점에서 서성거릴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 기회에 아름다운 추억들…2026-09-21 19:37
슬픈 전설 속 이승에 피는 꽃 하얀 밥알 한 톨이 자줏빛 꽃잎에 얹혀있다 서러움의 배고픔 무서운 시집살이 고백 같은 슬픈 너의 이름 붉은 넋으로 지는 꽃 지금은 어느 고을 꽃이 되었을까 나비가 되었을까 ▲‘문학춘추’ 시 부문 등단 ▲우송 문학상 수상 ▲작품집 : ‘너도 바람꽃’, ‘한 묶음…2026-09-07 18:12
파리 한복판 마레지구 골목길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잔 속에 파리의 가을이 프리마처럼 번져간다 갈색의 유혹에 감겨드는 프리마의 하얀 살결 한 모금 가을이 몸 안에 고독으로 내려앉는다 커피 향보다 진한 샤넬 향수가 코끝에 스멀거린다 수많은 인종들의 인파 속에 뒤섞인 언어들이 저마다의 모국어로 매듭지어…2026-09-07 18:12
바람은 물 위로 천천히 내려가고 강둑 풀들은 그림자로 햇살 밀어낸다. 낚싯대 드리운 노인은 엊그제 헤어진 친구 안부 묻듯 물결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다리 밑 그늘에서 습지 드나드는 물새 울음이 흩어진 추억 모은다 트레킹하는 청춘들 낭만 속삭이는 웃음소리가 갈대숲 사이 스쳐 갈 때 은빛 비늘…2026-09-07 18:12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있다. 천하의 명마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백락을 만나야 비로소 제 가치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이 숨어 있고, 그 빛을 먼저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의 눈길이 필요하다. 나는 반평생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호…2026-09-07 18:12
보일 듯 말 듯 또르륵 들릴 듯 말 듯 주르륵 온 힘 다해 내리니 아픔이 그리움이 기다린 듯 찾아온다 내리면 젖을세라 맞으면 아플세라 삶이 그렇듯 세차게 다가온다 ▲‘현대문예’ 등단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회원 ▲호남시조시인협회 운영위원 ▲용아기념사업회 이사, 김현승기념사업회…2026-08-24 18:31
아흔둘의 봄 건너 벚꽃이 병실로 들어선다 붕대 감긴 발등은 보랏빛 피워 몸 성한 곳 없는 지금 한쪽 눈꺼풀만 천천히 세상을 잊는 듯 깜박깜박 엄마, 엄마 몇 번을 불러도 허공으로 사라진다 대답 없는 시간 속에 우두커니 서서 주름진 얼굴 쓰다듬는다 세월보다 더 깊은 침묵의 강 건너 눈물은 …2026-08-24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