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열 조선대 명예교수·광주유학대학장

최근 광주향교(光州鄕校)가 전교(典校) 선출과 관련된 내분으로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임으로써 지역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역 유일의 관학(官學)으로 인재양성의 요람이었고 동시에 지역의 풍습(風習)을 바로잡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곳이다. 1909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日帝)는 그들의 황도신학(皇道神學)과 교육제도를 이식하는데 각 지역의 향교를 최대의 장애요인으로 인식하고 강학기능을 폐지하고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향교의 기능과 역할은 극도로 축소되었지만 적어도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각 고을에서 향교의 위상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광주향교는 조선조 태조 7년(1398) 이 지역의 유학교육을 위해 무등산 장원봉(壯元峰) 아래 건립되었다가 후일 지금의 대인동으로 옮겨졌고, 다시 지금의 구동(龜洞)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광주의 도심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재(광주광역시 지방유형문화재 제9호)로서는 대표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유림기관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成均館) 예하의 234개 향교 가운데 출입 유림의 숫자와 위상면에서 가장 대표적 향교로 꼽히는 광주향교는 시골지역의 향교들이 전교를 맡을 적임자를 찾기 어려워 애를 먹는 것과는 달리 전국 유일의 ‘1 광역시 1 향교’답게 전교 입지자들이 넘쳐남으로써 그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광주향교와 관련되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광주향교가 우리 지역의 교육발전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 지역의 거점국립대학인 전남대학교(全南大學校) 설립에 크게 기여하였음에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 통치 36년간 강학기능이 폐지되어 명맥만 유지되어온 각 고을의 향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그 본래의 기능을 되찾고자 노력하였고, 미군정하에서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회복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생 독립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재양성(人材養成)이 급선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경향 각지에서 사립대학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지역에서도 1946년부터 ‘조선대학설립동지회’가 조직되어 조선대학원(朝鮮大學園)이 개교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전국 굴지의 사립대학인 조선대학교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이 무렵인 1947년 전남지역의 유림(儒林)들도 광주향교에서 유림대회를 개최하고 ‘대성대학설립기성회(大成大學設立期成會)’를 조직하여 회장에 정상호(鄭尙好), 위원에 고광봉, 고재련, 신형식, 우명비, 이봉우 등이 선임되어 대학설립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48년 3월 광주향교 명륜당에서 미인가 대학이지만 본과 30명, 예과 45명의 제1기 입학식을 거행하여 대성대학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교사로 사용하기 위해 적산(敵産)인 광천동 소재 소화산업주식회사 건물 약 4천평과 부지 2만5천평을 불하신청하여 1950년 5월 불하 받았고, 1951년에는 대학의 운영주체인 재단으로 대성의숙(大成義塾) 설립인가를 신청하여 인가를 받음으로써 대학운영이 정상궤도에 진입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추진되던 국립대학설립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지역에서도 전남대학교 설립이 추진되기 시작되었다. 1951년 9월 국무회의에서 전남대학교 설립안이 통과되자 곧바로 ‘전남대학교설립기성회’가 조직되어 박철수 전라남도지사가 회장에 선임되었고, 동년 10월 국립전남대학교의 설립이 인가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함에 대성대학은 전남지역에 이미 사립대학으로 조선대학이 착실히 발전해가고, 더욱이 국립대학이 설립된 마당에 대성대학이 존재할 필요성이 있는가를 자문하게 되었고, 마침내 대성대학을 국립전남대학교에 합병하기로 하였다. 기존의 교수와 학생은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이관·승계하고 향교에서 소유하고 있던 9억 원의 농지증권도 전남대학교에 기부하였으며, 대성대학의 정상호 학장이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함으로써 양 대학의 합병은 마무리되었다.

성균관과 향교에서는 봄(음력 2월), 가을(음력 8월) 두 차례 ‘석전(釋奠)’이라 하여 공자님을 비롯한 성현들에 대한 제사를 봉행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이고 기관장들이 거의 참여하는 지역의 큰 행사로 치루어지고 있다. 특히 대구향교(大邱鄕校)에서 거행되는 석전에는 매번 경북대학교(慶北大學校) 총장이 헌성금(獻誠金)을 보내 인류의 큰 스승이자 교육가인 공자님과 성현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표시하고 있어서 필자에게는 매우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경북대학교를 설립할 때 대구향교가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는지에 대해서는 과문한 필자로서 확인할 수 없지만, 용봉관(龍鳳館) 옆 최상채 초대총장 동상 옆에 광주향교에 대한 감사함을 기리는 표지석이 아니더라도 광주향교와 전남대학교 간의 우의(友誼)와 협력이 앞으로 더욱 증진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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