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아동문학가

“아줌마, 시금치 사….”

둘째 아이가 6살 쯤 되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손 꼭 잡고 시장에 나섰다가 한바탕 야단이 났다. 노점상 앞을 지나는 순간, 노지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거라 달고 맛나다며 시금치를 사가라는 말에 아이가 버럭 화를 냈다. “우리 엄마 아줌마 아니에요!” “엄마가 아줌마가 아니면 아가씨냐?” “엄마가 아가씨면 너 네 엄마 아니겠네?” 주위에 있던 분들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아이에게 장난을 치시는데, 아이는 벌게진 얼굴로 나를 향해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우리 엄마 맞지이~!”

“그럼, 엄마 맞지! 맞고, 말고.” 아이 손을 꼭 잡고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목안이 울컥 눈물이 났다. 직장 일에 가정 일에, 늘 동동거리며 정신없이 사느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인 엄마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래, 그래, 괜찮아. 잘 하고 있어!’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또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향해 불러준 “엄마!”라는 단어는, 가슴 가득 따스한 햇살이 되었다.


노가리, 코다리, 생태찌개, 황태구이, 황태찜, 북엇국, 북어무침….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들어 있는 명태 요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국이나 찌개는 물론, 알은 명란젓이 되고 창자는 창난젓이 되어 입맛을 살려준다. 다양한 요리법만큼이나 이름도 많다. 새끼 명태는 애태, 성장은 끝났지만 크기가 작은 명태는 왜태, 산란 후 잡힌 명태는 꺽태, 산란 전에 알을 밴 상태로 잡힌 명태는 난태 등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천준형 작가의 그림책, ‘뭐라고 불러야 해?’ 에 등장하는 명태도 마찬가지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며 다닐 때는 ‘명태’라 하더니 그물에 잡혔다고 ‘망태’가 된다. 잡힌 건 똑 같은데, 낚시로 잡혔다고 ‘조태’가 되는 명태. “싱싱하고 맛좋은 생태가 있어요!” 수산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니 생태가 되고, 차디찬 얼음 속에 들에가 꽁꽁 얼었을 뿐인데 ‘동태’가 된다. 색깔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속이 노랗다고 ‘황태’, 껍질이 검다고 ‘먹태’, 하얗게 되었다고 ‘백태’가 되는 명태는 말린 상태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코를 꿰어 꾸덕꾸덕하게 말리니 ‘코다리’가 되고, 바싹 말랐다고 ‘북어’가 되고, 너무 너무 바아아아아아짝 말려 딱딱하니 ‘깡태’가 된다. 장소에 따라 잡히는 방법에 따라 색깔과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명태는 어떤 마음인 걸까. “너는 날 뭐라고 부를 거야? 나는 널 뭐라고 부르면 돼?” 독자를 향한 명태의 외침에 마음이 찡하다.


‘아가야, 학생, 아가씨, 엄마, 선생님…….’

오늘도 우리는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며 살아가고 있다. 때와 장소, 상황과 시기, 직책,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면 학부모가 되고, 동창들을 만나면 친구가 되고, 손님으로 가면 고객이 되고,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으면 환자가 된다. 누군가 찾아왔었다는 말에도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건 나를 부른 호칭이다. 상대방이 부른 호칭에 따라, 친구인지, 선배인지, 가족인지, 모임과 관계된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듣고 싶은 호칭만 듣게 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할 호칭도 있고, 들을수록 힘이 나는 호칭도 있다.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호칭도 있고, 단 한 번의 부름만으로도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되는 호칭도 있다. 오랜 시간 바라며 꿈꾸며 소망했던 호칭도, 어느 순간 뒤돌아서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좋은 친구라는 말에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말에는 주위 한 번 더 둘러보게 된다.


“엄마! 할머니!”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어느 새 달려가 온전히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누군가 부르는 호칭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호칭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호칭에 따른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를까? 너는 나를 뭐라고 부를 거니? 나는 나를, …뭐라고 부르고 싶은 걸까? ‘사랑해, 친구!’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함을 듬뿍 담았으면 좋겠다. 또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응원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