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상 前 광주교육연수원 총무부장

필자는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항상 동심에 남아 있는 선생님 두 분을 모시고 조촐하게나마 식사를 해 왔다. 그분들은 벌써 84세가 됐다. 인기 많았던 젊고 왕성했던 시절이 엊그제였는데 무심코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두 분은 해남 북일초교에 근무했던 인연으로 평생지기가 되셨다고 한다. 이에 필자는 올해도 그분들의 초임지였던 해남 북일까지 드라이브하면서 5월의 싱그러움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학창시절과 건강·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김장용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웅변과 주산을 가르치면서 국가관을 심어주셨기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학생부장을 10년 이상 역임하신터라, 엄하지만 따뜻하고 정이 많고 올곧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고향 가는 길가에도 아카시아꽃, 찔레꽃이 여기저기에 만발해 그 향기가 진동하며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다. 우리는 꽃들의 향기가 가득한 봄의 흔적들을 여유롭게 즐겨 봤다. 예쁘게 핀 꽃처럼 나의 인생도 향기를 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곤 했다. 봄의 향기에 취해 학창 시절로 돌아가 ‘스승의 노래’, 가곡 ‘고향의 노래’, 동요 ‘찔레꽃’ 를 부르니 두 분 스승님은 무척 흐뭇해하셨다.

우리 일행은 오후 1시께 강진군 사초리 선창식당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한 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지락을 채취하는 주민들과 마량항에서 고금도까지 연결되는 연륙교와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심신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가던 길목에 용일 삼사리 부락을 방문한데 이어 방산에 들러 거대한 장고봉 고분을 관람했다,

그리고 김 선생님과 동기동창이셨던 한 지인을 만났다. 84세이지만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강건해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특유의 화법으로 이어진 긍정의 에너지가 필자에게도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지난해에도 뵀지만, 여전히 강건했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처럼 행복한 노후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질병 때문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이 부부는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 탓으로 돈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아낀 비용을 인근 마을에 50만원씩 기부한다고 했다. 또 아껴 모아 둔 돈은 며느리나, 예쁜 손주들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가족 간의 친밀도를 쌓아간다고 자랑했다. 그는 장례비용 외에는 한 푼도 남김없이 사용하고 미련없이 떠나고 싶다는 바램도 말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인과 함께 맛집을 찾아 전국 방방을 누비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니 부부 금실도 쌓아가고 있다고 했다. 성경 말씀에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했듯이 받는 것보다 주어 누리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북일초등학교를 방문했다. 60년 전에 봉직하였던 학교라 두 분의 감회가 새롭다고 하셨다. 교문 뒤에 있는 송림은 옛 모습 그대로이나 학교의 환경은 많이도 변했다. 당시에는 1천 여 명 이상의 학생 수에 교직원들의 숫자도 많았으나 이제는 저출산과 노령화 등으로 인해 겨우 학교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선생님께서는 고향과 모교를 다녀오게 돼 무척 행복해 하셨고 집에 귀가한 후 고맙다는 문자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행복해 하시는 스승님을 보니 더불어 행복했다. 두 분 스승님은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학식과 덕망이 높아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지성의 거점이었고, 지역사회의 지도자의 역할까지 하셨다. 참된 사랑으로 헌신적으로 제자들은 가르쳤다. 제자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사랑의 회초리를 잡으셨다. 이에 우리는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올곧게 성장해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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