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앞, 옷가게 유리창에
“폐업 정리”
크게 써 붙였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최신 유행하는 옷맵시를 바라보며
눈요기하기가 즐거웠는데
옷가지가 다 팔려 휑한데도 문 닫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 보았더니
“폐업 정리” 밑에 잔글씨가 보인다
“마네킹도 팝니다”
들여다보는 내 얼굴이 겹쳐 비쳤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슬퍼졌다
마치 내 영혼을 헐값에 내놓은 것 같아.
(시집 ‘비비추의 사랑 편지’, 문예바다, 2023.)

[시의 눈]

집 앞 공터엔 폐업 60-80%로 인하 정리하고 있습니다. 메이커 아웃도어와 신발, 심지어 신사복까지 다 만원에 땡처리합니다. 또 있네요. 그 옆엔 인덕션 냄비세트, 티타늄 프라이펜 등을 모아놓고 역시 만원이라네요. 코로나로 장사가 안돼 재료 값도 못 건지는 듯합니다. 다들 그냥 그냥 버텨왔다고 해요. 한데, 그런 걱정과는 상관없다는 듯 미소만 짓는 마네킹이 눈에 띕니다. 보니, 그도 매매하는군요. 허, 이러다 주인마저 팔지 모르겠네요. 난 싸게 사려는 의도는 놔두고 이쁜 마네킹을 쳐다보다가 아내에게 혼이 납니다. 아따, 목디스크 걸리겠네요. 허, 나는 50% 헐값에 팔릴 뻔한 정신을 얼른 회수해 옵니다. 주경림 시인은 서울에서 나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풀꽃우주’(2009), ‘뻐꾸기창’(2020)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역사의 유물들로부터 자기의 빗살을 새기듯 미학적으로 표상화해 내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