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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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웅의 ‘문화자산’…아쉬운 랜드마크
김재정
문화부장

  • 입력날짜 : 2017. 03.27. 19:43
이달 초 광주 서구 농성동에 옛 상록미술관을 리모델링한 ‘하정웅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하정웅이 누구지?’라고 물을 수 있다.

동강(東江) 하정웅 선생은 일본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 2세 사업가다. 고교 졸업 후 미술학교를 다니던 미술가 지망생 하정웅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 사업에 뛰어들어 고생 끝에 가와모토전기상사를 설립, 큰 성공을 거뒀다. 이루지 못한 미술에 대한 꿈을 수집과 기증으로 대신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재일교포 화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작품을 수집했다. 당초 일본 타자와코(田澤湖)에 재일교포들의 한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의 미술관을 세우려했지만 한·일 정치·외교 문제로 좌절됐다.

경이롭기까지 한 메세나 활동

결국 그가 선택한 곳은 모국, 그 중에서도 광주였다. 광주를 택한 이유는 ‘기도의 미술’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 생각해서다. 광주는 일본의 재일교포처럼 한국 내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고 1980년 5·18 당시 군부세력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곳이었다.

1993년 212점을 시작으로 그동안 광주시립미술관에만 총 2천523점의 전 세계 미술작품을 기증했다.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엔 총 3천690점을 기증했다. 또한 전북, 부산, 포항 등지의 공공미술관에도 각종 작품을 기증, 메세나 정신을 전파했다. 그의 메세나 활동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정된 지면이 아쉬울 정도.

어찌 됐건 하정웅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이우환전’이 열리고 있다. 최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와 함께 위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바로 그 이우환이다. 작품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다.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이우환 작가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하정웅 선생의 역할이 컸다. 1980년 일본에서 권위 있는 미술잡지 ‘미즈에(みずゑ)’ 12월호 특집 기사가 하정웅 선생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경남 함안 출신 재일교포 작가 이우환의 예술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하정웅 선생은 잡지사에 연락해 ‘미즈에’ 잡지 재고 500부 전체를 구입했다. ‘미즈에’ 잡지가 필요했던 이우환 작가는 하정웅 선생에게 연락해 잡지 몇 권을 우편으로 받게 되는데, 이 때 답례의 의미로 이 작가가 하 선생에게 건넨 작품 8호 크기의 ‘선으로부터’가 지금은 수억원을 호가하는 세계적 대작이 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고, 1984년 이우환의 유럽 전시경비를 지원하면서 이우환 작품 수집이 시작됐다. 하 선생은 1993년 13점, 2003년 4점, 2012년 18점, 2014년 1점 등 총 36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단일 미술관으로 이우환 회화 작품의 전 세계 최대 소장처다.

그의 정신 담을 공간의 한계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이우환의 그림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초다. 취재 차 찾은 일본 나오시마에서였다. 베네세하우스를 취재하면서 지중미술관과 함께 이우환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베네세하우스, 지중미술관처럼 이우환미술관 역시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만들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작품 안에 자리잡은 이우환의 다양한 작품. 그야말로 미술 애호가에겐 ‘로망의 장소’다. 매년 4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나오시마를 찾고 있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의 현재를 있게 한 배경은 이우환,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안도 타다오의 숨결이 담긴 건축의 힘도 컸다.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환전을 찾은 관람객은 지난 25일 현재 2천500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00명의 시민이 이우환의 작품을 직접 본 셈이다. 우리네 미술관의 현실을 감안할 때 꼭 적지 만은 않은 숫자다. 하지만 아쉬움이 짙게 드리우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우환의 40년 회화사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광주시립미술관이 보유한 2천523점의 하정웅콜렉션. 이를 활용한 전시는 매년 열린다. 안타깝게도 건축과 하정웅콜렉션의 콜라보레이션은 찾아볼 수 없다. 더욱 많은 시민, 관광객을 끌어들일 건축물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건축공간은 콘텐츠의 가치를 키워준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 새로운 하정웅미술관의 탄생을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 솔직히 나오시마의 이우환미술관, 지중미술관과 같은 ‘공간’을 광주에서도 보고 싶다. 하정웅 선생의 메세나 정신을 더욱 많은 시민들이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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