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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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동서교역의 관문 ‘스리랑카’ (4)
스리랑카 문화의 상징…해안가 ‘외다리 낚시’ <스틸트 피싱>

  • 입력날짜 : 2017. 09.26. 18:50
‘코갈라’에서 ‘마타라’, ‘웰리가마’로 이어지는 해안가 스틸트 피싱 터. 석양에 물든 황금빛 바다 인도양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다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시작 되는 곳이다. 스리랑카 남해안 ‘마타라’ 등지에서 행해지는 ‘외다리 낚시’도 그 중의 하나다. 외다리 낚시는 바다 한 가운데 세워 논 나무기둥에 매달려서 하는 낚시다. 오랜 세대를 거치며 계승돼 온 스리랑카의 사회적 유산이다. 한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첩에 실리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사진 한 장을 보고 스리랑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여행자가 많다고 알려질 만큼 유명하다. 최근엔 생계유지 보다는 관광용으로 변했지만, 언제부턴가 스리랑카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해질 무렵 붉게 지고 있는 해와 장대가 어울러 진 모습은 인상적이다. 외다리 낚시 사진을 볼 때면 그 바다, 인도양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문병채 (주)국토정보기술단 단장
▶전통 어업 ‘스틸트 피싱’

스리랑카 남해안에 있는 오래된 항구, ‘갈레’! 이곳에서 서쪽으로 30분쯤 차로 달렸다. 해안에 ‘스틸트 피싱’(Stilt fishing)도 보이기 시작한다. ‘스틸트 피싱!’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대낚시 혹은 외다리 낚시가 된다. 스리랑카 전통어업의 중의 하나다. 스리랑카를 상징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주로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에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낮에는 햇빛이 강할 뿐만 아니라 고기가 물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청어와 고등어, 병어 등을 잡는다.

바다 한가운데 나무 기둥을 세워 놓고, 그 기둥위에 매달려 낚시하는 방법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낚시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집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그 사진 한 장을 보고 덜컥 스리랑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여행자도 많을 정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나무기둥이 상당히 먼 바다에까지 있어 위태롭다. 망원렌즈로 최대한 당겨 찍었다. 장대와 바다밖에 없는 이 풍경 조차도 멋지다. ‘코갈라’에서 ‘마타라’, ‘웰리가마’로 이어지는 해안이다. 높은 파도가 일고 있다. 서핑하기에 좋은 파도이다. 그래서인지 서핑 스쿨도 보인다.


▶생계 수단→관광용 상품 변모

해변 뒤 움막에서 낚싯대를 든 사람들이 나왔다. 리더 격인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우리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실제로 여행을 하다보면 환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적지 않는 여행객이 어떤 환상을 갖고 여행지를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갈레 해안에서 ‘스틸트 피싱’을 체험하고 있는 필자.
외다리 낚시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모델이 되어 주고 쉽게 돈을 벌고 있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이 풍경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 흥정 끝에 적지 않는 모델료를 주고, 영혼 없는 사진을 촬영하기로 했다. 고민이 많이 됐지만, 그래도 사진을 담아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돈을 좀 주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았다. 바다 가운데 나무기둥을 세워두고, 그 위에 걸터앉거나 매달린 채 낚시를 한다.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에 몸을 맡긴 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미끼와 낚시 바늘은 보통 머리에 쓴 터번 안에 보관한다. 간간히 물고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성의가 없어 생동감을 느낄 수 없었다.


▶스릴 만점 ‘스틸트 피싱’ 체험

돈을 줄만큼 줬더니 직접체험 하는 것도 허락했다. 체험은 처음엔 좀 위험했다. 잘못해 떨어진 경우는 매우 위험했다. 밑이 뾰쪽뾰쪽한 너덜바위로 돼 있어서였다. 장대 위로 올라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외다리여서 손잡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물속에 있는 기둥이라 미끄러웠다. 그들은 익숙하고 능숙했지만, 나 같은 사람은 힘들었다. 균형 잡는 것도 어려웠다. 중심을 못 잡고 자꾸 넘어지려고 해서 긴장이 많이 됐다. 거친 파도가 기둥을 강하게 때릴 땐 흔들거리고 무서웠다. 계속 쳐 대는 파도는 바다 위를 응시한 시선을 어지럽게 했다. 그러나 이윽고 고기가 잡히자 짜릿한 스릴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자세도 갖춰져 가고 여유도 생겨갔다.

인도양 해변의 아름다운 저녁노을.
얼마 안 있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붉어지고 바다가 그림처럼 변해갔다. 먼 바다 속 기둥에 걸터앉아 물든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발밑까지 황금색 물결! 너무나 황홀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아저씨들은 터번을 풀고 셔츠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했다. 텅 비어버린 바다만큼이나 허한 우리의 마음…! 그러나 생계인 걸 어떻게 하나! 낮은 소득과 거친 환경에 사라져가는 전통이 돼가고 있다. 현재는 유흥업과 호텔이 들어서고 스노클링 등의 관광이 낚시터를 대신하고 있다. 해안 지역이 상업화 되고 있다.

오랜 세대를 거치며 계승되어온 사회적 유산의 보존이 아쉽다. 삶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느껴진 ‘그 바다’, 인도양이 그리운 이유다.


▶운 좋게 진짜 낚시꾼을 만나다

한참을 망상 속에 그리며 사색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때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장대 위에 올라가 낚시를 시작했다. 제법 큰 물고기도 낚는다. 저녁 파도(밀물)가 밀려오면서 물고기가 함께 떠밀려온 듯했다. 신기했다. 저녁 때 먹으려고 잡는 진짜 낚시꾼이다. 이들의 복장과 모자가 참 마음에 든다.

붉게 물드는 석양의 시간! 정말 한 폭의 그림 같다. 붉게 지고 있는 해와 장대가 어울러 진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이것이 스리랑카의 매력인가? 가냘픈 외다리에 의지한 체,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인내하는 그들, 멈춰 있는 시간, 삶의 숭고함과 시간의 덧없음이 교차돼 느껴온다. 동시에 아름답다고 하기 보다는 그들의 빈약하고 왜소한 알몸에서 풍겨 나오는 삶의 고달픔이 눈물을 적시게 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에 있는 포장마차에 갔다. 음식들을 바로바로 만들어 준다. 가격도 저렴하고 그런 대로 맛도 있다. 바다소리 들으며 밖에서 먹는 운치가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낚시’

낚시의 역사는 길다. BC 2천년경 이집트 그림에도 묘사돼있다. BC 400년경 중국 문헌에는 대나무 낚싯대에 명주실을 매달아 낚싯바늘에 밥을 끼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낚시와 관련된 고사도 많다. 공자는 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했다. ‘군자는 고기를 잡되 그물질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태공은 낚시로 소일하면서 천하의 경륜을 탐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낚시와 관련된 고사와 문학작품이 많다. 우리나라 낚시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양양군 오산리 호숫가에서 발굴된 돌 낚싯바늘은 4천500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석탈해가 ‘낚시로 고기를 잡아 어머니를 공양했다’는 문헌도 나온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압록강에 싱그러운 봄에 낚시 배가 강 위에 한가로이 떠있구나’라는 시구가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낚시는 우리 먼 조상들과 오랜 역사를 같이했다. 사람은 아득한 옛날부터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 먹고 살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먹기 위한 고기잡이보다는 취미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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