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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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해상실크로드의 중국 거점, 영파 (2)
심청 설화가 스며있는 중국 주산군도 ‘보타도’

  • 입력날짜 : 2017. 11.28. 18:45
멀리 바다에서 바라 본 보타산 관음성지.
심청전은 춘향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다. 심청은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밝혀지고, 심청전에 나오는 인당수, 관음사상, 중국상인(심국공), 무역선 등에 관한 증거가 제시되고 있어 매우 흥미를 주고 있다. 곡성의 관음사에 전해오는 설화가 그렇고, ‘심청’의 무대가 되는 중국 보타도 일대에 내려오는 관음사상과 심씨 가문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야기의 핵심 무대인 중국 주산군도의 ‘보타도’를 다녀왔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곡성에 전해지는 심청 설화

심청은 백제시대 전기, 곡성 출신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본명은 원홍장이고, 맹인 아버지는 원량이었으며, 그녀는 쌀 300석을 받고 중국 절강성 보타도 심가문진(심씨 마을)에 사는 무역상인 심국공에게 팔려갔다고 한다. 따라서 심씨 집안의 양녀가 됨에 따라 원씨인 성을 심씨로 바꾸고 이름도 새로 ‘청’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심청은 행실이 바르고 얼굴도 예뻐 진나라 혜제의 ‘문명황후’가 된다.(진서에는 원희(元姬)로 기록)

이어 문명황후는 당시의 관음불교에 심취해 백제 곡성 관음사에 500 나한, 관음상, 소조 금니상 등을 보내고, 심청의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된다.

‘심청전’은 뱃길로 이어진 한국과 중국 간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최근 소설 속의 인물인 줄만 알았던 심청이 실존인물이었다는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곡성의 작은 마을 ‘송정 부락’ 사람들은 심청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우물이 하나 남아 있다. 심청이 마을 아낙네들한테 젖을 얻어먹던 곳이라 전한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심청의 효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관음사’란 절이 하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수림이 우거져 있어 역사성이 느껴진다.

보타산에서 가장 오래되고 제일 큰 사찰인 보제사를 찾은 필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예사스러운 절이 아니다. 우선 ‘석가모니’가 아닌 ‘관음보살’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또한 1천700년의 놀라운 역사를 지니고 있고, ‘사적기’가 지금껏 보존돼 오고 있다. 최근 이를 해석한 글이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심청전과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성덕처녀가 관음상을 등에 지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가는 길목도 똑같다. 참으로 기이한 문헌이었다. 심청이 실존인물이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문헌이 될 만했다.

▶심청이 팔려갔던 ‘심가문’

고대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무역항구는 산동의 등주항, 장수의 연운, 절강의 명주항, 복건의 천주항, 광동의 광주항, 그리고 고려의 예성항이었다. 절강의 명주항이 바로 영파다. 당(唐)·송(宋) 시대 이후에는 명주(明州)라고 불렀다. 융강(甬江)과 위야오강(餘姚江)의 합류점에 있다.

역사적으로 왜구의 출몰이 잦아 방위기지를 두기도 하였다.

영파는 중국 상인을 대표하는 ‘닝보방’(寧波幇)의 원류이다. 한반도의 개성상인과 같은 존재다.

당·송대부터 해상교역으로 명성이 높았다. 우리나라와도 바닷길로 연결됐다. 고대 한중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구법승(求法僧)들이 거쳐 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신라초’(新羅礁)·‘신라방’(新羅坊) 등 신라 시대의 유적도 남아 있다.

영파 앞에는 주산군도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섬이 많은 해역이다. 1천390개의 섬으로 이뤄져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은 주산도다. 섬 형태가 배(船)처럼 생겼다고 주산도라 부른다.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배’의 형상을 보이고 있다. 어류 창고라는 별명이 있다. 중국 제일의 어장이다. 물고기 서식, 번식, 성장, 회유하는데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 먹이가 풍부하다.

저우산항은 닝보항과 함께 중국 내륙 환적 허브항만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이 두 항구의 물동량은 7천834만t이다. 세계 5위인 부산항을 바짝 뒤쫓고 있다.

관음불교의 발생지인 보산산의 관음사.
주산도 동쪽 끝에는 심가문(沈家門)항이라는 항구가 있다. 옛날부터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중국 최대의 어시장도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 관광자원 차원에서 근래 들어 ‘심가문’ 항구가 심청이 당도했던 곳이라고 해서 대대적인 선양사업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는 심청 사당을 만들어 심청극을 공연한다.

황석영이 ‘심청’이라는 소설을 쓴 후 더 활성화됐다. 더러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자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곳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목각인형극과 타악기 징과 북을 이용하는 주산나고와 도조무(跳蚤舞)라는 춤으로 유명하다. 이는 이 곳이 중국 내륙과 달리 특이한 민속과 문화가 있는 곳이란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질 민족이 살았던 곳이 아니었을까 한다.

심국공(沈國公)이 살았던 마을에 최근 곡성군에서 ‘심청공원’을 만들어 기념비를 세워놓았다. 1만5천평의 널찍한 공원이다.

▶관음불교의 발생과 전래

심청과 관계되는 곳은 주산군도의 가장 서쪽 먼 바다에 위치한 ‘보타도’다. 이 곳은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보타도에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조음동(潮音洞)! ‘파도가 동굴 속으로 들어와 울린다’는 의미에서 ‘조음동’이 있다.

잠시 서서 관음의 소리를 들어봤다. 소리로서 관음을 친견하고자 함이었다. 파도가 커다란 빈 동공에 부딪혀 울리는 소리가 아주 특이하게 울렸다. 예사로운 소리가 아니다.

이곳 조음동이야말로 관음불교가 생겨나게 한 원인을 갖게 한 곳이다. 최초 관음불교는 BC 250년경 생겨났다. 남인도 ‘보타락’(補陀落·Potalaka)이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과 나무가 가득한 작은 산(언덕) 또는 흰 꽃이 피어 있는 언덕의 뜻이 ‘포타라’라고 한다.

티베트의 라싸 포탈라도 이 관음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 때 중국 보타도에 전해졌다. 이곳 조음동에 최초로 관음이 모셔졌다.

관세보살은 여러 보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다. 한손에 연꽃을 들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어 매우 귀족적이다. 관음이 모셔진 법당을 보타전이라고도 한다. 보통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BC 2세기경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현재 전국 33곳에 관음사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거의 바닷가에 있다. 우리나라에 3대 관음성지가 있다.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등이 그것이다. 홍련암은 마루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볼 수 있다. 보문사는 인도의 한 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와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다.

보리암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모셔왔다는 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모두 남인도 보타낙가산을 관음보살의 근원지로 삼고, 중국 주산열도의 보타도의 조음동을 성지로 삼고 있다.

고려 충선왕은 관음상에 참배하러 대도(북경)에서 보타산에 가기도 했다. 이때 이제현 등 많은 신하들이 왕을 수행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보타산은 고려시대에도 한·중 항로의 중요 좌표로서 구실을 다했던 것이다.

▶한민족이 남긴 흔적 신라초와 고려도두

고대 한·중 해상 교통로의 길목에 위치한 보타산에서, 한국 관련 기록을 남긴 신라초(新羅礁)와 고려도두(高麗道頭)를 찾아봤다.

중국 닝보(寧波) 앞 주산군도(舟山群島)에 보타도(普陀島)라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 있다.

그 섬 남쪽 바다 속에 암초가 하나 있다. 큰 삿갓처럼 생겼다. 주민들은 이 암초를 ‘신라초’(新羅礁)라고 부른다. 신라초의 지명은 남송 불조통기(佛祖統紀)에 처음 출현한다.

고려도두(高麗道頭)는 고려에서 매년 공물(貢物)을 송나라에 바치러 갈 때 정박했던 곳이다.

인근에 보제사(普濟禪寺)가 있다. 주로 고려인들이 올라가 참배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인들이 세운 절이 아니었는가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현재는 내륙으로 변했다.

보제선사에서 서쪽으로 1㎞ 내려 오면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옛날 고려도두(高麗道頭) 자리라고 한다. 지금은 육지로 변해 아파트가 들어차고 전답으로 변해버렸다. 해변의 약 500m 정도가 육지로 변해 버린 셈이다.

▶중국불교의 4대 성지 ‘남해관음상’

맨 먼저 ‘남해관음’으로 이동했다.

거리도 제일 가깝지만, 보타산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보타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가니 멋진 풍경이 들어온다. 영험하다고 소문난 사찰이어서인지 향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많고, 일보삼배하며 올라가는 신도도 보인다. 불공드리는 효과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200m쯤 올라가니 입구가 보인다.

표를 사서 입구에 들어서니 ‘남해관음상’이 정면에 보인다. 높이 18m(기단부를 포함하면 33m)로 거대하다. 어마어마한 크기다. 또한 화려했다. 1997년 완공됐다고 한다.

‘33’이란 숫자는 아주 의미 있는 것이다. 보타도 해안선의 길이가 33㎞이고, 삼월삼짓날(3월3일)에 가장 큰 축제가 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관음동상이다. 70t의 구리(동)이 사용됐으며, 얼굴 부분에 6.5㎏의 순금이 들어갔다.

참배객들은 주로 뱃사람들이다.

중국 해안도시, 대만, 홍콩 등에서 온다. 매일 끝없이 밀려온다.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하는 관음보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보타산에서 만큼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단부에는 천개의 불상을 모셔놓았다.

모두 화려하고 장중하다. 모두 기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위에 18m의 거대한 관음상이 서 있다. 왼손은 법륜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무외인을 하고 있다. 앞의 향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작은 구멍들로 동전을 넣기도 한다. 가족 단위가 많다.

중국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불상! 햇살이 따갑던 한여름. 아침부터 굽이굽이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몇 시간을 왔던가? 불교신자가 아닌 나는 소원을 빌었다.

계속 소원 빌고, 또 빌고, 빌고…! 늦은 점심 먹을 때까지 소원을 빌며 이곳에 머물렀다.

멀리 신라초가 보인다. 이곳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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