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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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을 열어 놓고…
박준수의 청담직필

  • 입력날짜 : 2017. 12.04. 18:58
어느덧 정유년도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있다. 한 해의 갈림길에 서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필자도 최근 신문사에서 하던 일이 바뀌어 주필(主筆)이라는 버거운 책무를 맡게 되었다. 기자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여서 아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지만, 한편으로는 격에 맞게 깊고 그윽한 글을 써야 하는 막중한 중압감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30년의 성상(星霜)이 흘렀다.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말하는데, 그 보다 세배나 긴 세월을 펜 하나에 의지해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부침이 심한 지방신문사에서 거의 한 평생을 몸담아 왔으니, 이런 것을 두고 팔자라고 하는 걸까.



펜 하나에 의지한 30년 외길



이제 글방을 새로 차렸으니 간판이 있어야겠다. 하여, 며칠을 궁리하던 끝에 ‘청담직필(淸談直筆)’이란 사자성어를 착안하였다. 중국 고사성어에 나오는 ‘청담(淸談)’과 신문사 사시(社是)중 한 구절인 정론직필의 ‘직필(直筆)’을 조합하여 만들어 보았는데 의미적으로나 발음상으로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청담(淸談)’은 글자 그대로 맑은 이야기로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철학적 담론을 말한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 후한 말에 환관의 탄압(黨錮의 禍)으로 절개 높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은 이래 지식인들이 난세에 세속을 피해 정치적 비판, 인물평론을 벌였는데 이를 청의(淸議)라고 했다. 청의라고 한 것은 당시 지식인 관리를 청류(淸流)라 부르고 환관들을 탁류(濁流)라 칭한 때문이다. 이런 풍조는 위나라에 들어와 언론탄압과 유학의 쇠퇴를 계기로 하여 노장(老莊)의 공리(空理)에 바탕을 둔 철학적 담론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를 청언(淸言)이라고 한다. 위나라 말기에는 사마(司馬)씨 일족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에 심취하였다. 이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던 일단의 지식인들이 나왔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죽림칠현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청담가로 위(魏)나라의 하안(何晏)과 왕필(王弼), 서진(西晉)의 왕연(王衍)과 악광(樂廣) 등이 있다. 동진(東晉) 시대에 이르러서는 마침 퍼지기 시작한 불교의 교리까지도 청담의 대상이 되었다. 남북조시대에 와서는 청담의 형식도 바뀌어 공개 토론회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청담의 풍조는 불교의 성행으로 쇠퇴했다. 당시의 청담을 모은 전적으로는 남송(南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가 있다.



맑은 시대의 담론 담아낼 터



이같은 청담의 장소가 조선시대 광주에도 있었다. 광주천 한 가운데 자리했던 석서정이란 정자로 지금 광주공원 앞 광주대교 인근에 복원돼 옛 정취를 풍기고 있다. 선비들은 사방이 물결로 둘러싸인 이곳에 모여 시를 짓고 세상사를 논하였다. 석서정의 원래 기능은 장마철 세차게 흘러내리는 급류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석서(石犀)는 ‘돌로 만든 물소’라는 의미로 진나라 효문왕이 이빙으로 하여금 돌로 물소를 만들어 물의 재해를 진압한 데서 연유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색(1328-1396)이 남긴 석서정기가 실려 있는데 당시 정자주변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옛 물길 위에 정자를 짓고 그 한 중간을 거점으로 봇물을 양쪽으로 흐르게 하니, 사면으로 정자를 두른 것이 마치 벽수와 같은 형국이 되었다. 정자의 전후에 흙을 모아 작은섬을 만들어 꽃나무를 심고, 두 군데에 다리를 놓아 출입하게 하고는 그 가운데 앉아 휘파람을 불며 시를 읊으니 마치 뗏목을 타고 바닷속에 앉아 많은 섬들이 안개와 파도 사이로 출몰하는 것을 보는 것 같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고 적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물을 다스리는 데도 자연의 이치를 적절히 활용할 뿐 아니라 풍류를 곁들이는 지혜가 있었다.

석서정은 지난 2016년 4월 20대 총선때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홀대론으로 들끓는 호남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광주공원 노인들을 모시고 진정성있게 사과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국민의당의 돌풍을 막아내지 못하고 전남에서 1석을 건지는 데 그쳤지만 이후 대선에서 반전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

옛 선비들이 정자에 모여 세상사를 논하고 인물평론을 벌였듯이 ‘청담직필(淸談直筆)’도 우리시대 맑은 이야기를 올곧게 전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과 질책을 기대한다. <이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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